컨텐츠 바로가기

10.23 (수)

김건희 동행명령장 발부, 종이 쪼가리에 그친 이유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이성윤·이건태·장경태 의원 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김건희 여사 동행명령장을 전달하려고 이동하던 중 경찰에 가로막혀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 끝장 국정감사’를 기조로 보름간 달려온 더불어민주당이 국감 마무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정책 질의는 삼가고 현안에 집중하라’는 원내지도부의 특명 아래 민주당 의원들은 거의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김건희 때리기’에 나섰지만, 그 파괴력은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만 못한 것 같습니다. 지난 21일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강혜경씨(김영선 전 의원의 회계 담당자로,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인물이죠)를 빼면 대부분의 핵심 증인들이 출석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국감을 시작하기 전부터 ‘동행명령장을 발부해 증인들을 증인석에 앉히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명씨 등 민주당이 채택한 증인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국감 출석은 거부하고 언론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동행명령이 뭐길래, 민주당은 ‘무공비급’(무협소설 등에서 무공이 적힌 보물)처럼 자랑하고 김 여사를 포함한 불출석 증인들은 그 앞에 코웃음을 치는 걸까요.



“동행명령장은 구속영장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국회 법사위 국감에 불출석한 김건희 여사에게 동행명령장을 전달하려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을 찾은 검사 출신의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의원과 함께 간 같은 당 이건태·장경태 의원 역시 이에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동행명령은 정말 구속영장에 준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행명령장에는 강제력이 없습니다. 동행명령권은 1988년 만들어진 제도로, 증인이나 참고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국회 출석을 거부할 경우 이들을 부를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상임위에서 동행명령서를 발부하면 상임위 직원이 직접 명령서를 들고 대상자를 찾아가 동행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집행됩니다.



국정감사에 채택된 증인은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국회증언감정법(증감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동행명령마저 거부하거나 고의로 동행명령장 수령을 회피할 경우 국회 모욕죄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고, 동행명령 집행을 방해한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국회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5년 이하의 징역이라니 처벌 수위가 높은 것 같지만, 실제로 동행명령 불응으로 처벌을 받은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2019년 홍준표 대구시장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해 유죄가 된 사례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거부한 사건이 동행명령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실제 동행명령을 거부할 경우 대부분 불출석 혐의로 기소될 뿐, 모욕죄로 기소를 당한 경우는 흔치 않을 뿐더러 검찰 역시 약식 기소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동행명령권은 사실상 ‘정치적 메시지’라는 시선도 많습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동행명령장 발부는 실제 소환이나 처벌보다도 정치적 메시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동행명령을 집행하는 국회 직원들 역시 비슷한 생각입니다. 김 여사의 경우처럼 경찰을 동원해 접근을 막거나, 명태균씨의 경우처럼 자택을 비울 경우 직원들이 추가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사실상 없다는 겁니다. 직접 동행명령장을 전달한 경험이 있는 한 행정관은 “통상적으로 전달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단되면 보고한 뒤 철수하고, 동행명령장은 위원장에게 반환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동행명령을 단순한 요식행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증인이 불출석할 경우 ‘최후 수단’으로 작용하는 만큼 동행명령이 집행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국회사무처 국정감사·국정조사 통계자료집을 보면 동행명령 제도가 만들어진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36년동안 발부된 동행명령장은 모두 94건으로, 연 평균 2.6차례에 불과합니다.



소수지만 징역형을 받은 사례가 있긴 합니다.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 당시 불출석한 증인 대다수는 무죄를 선고받거나 벌금형에 그쳤지만,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8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22일 오후 기준 올해 국감에선 11건의 동행명령이 의결됐지만, 이중 현재까지 국감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0명입니다. 낮은 출석율에 민주당은 동행명령장의 구속력을 높일 법률 개정에 나설 계획입니다. 위성곤 의원은 동행명령장 발부의 범위를 국회 안건 심의나 청문회까지 넓히고, 서류를 미제출하거나 증언·감정을 거부할 경우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의 증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할 예정입니다. 윤건영 의원은 서류를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하지 못한 경우에도 2주간 공고하면 송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법원의 ‘공시송달’ 제도를 동행명령에 적용하는 개정안을 준비 중입니다.



김건희 여사는 오는 25일 열리는 운영위 국감에서도 증인으로 채택돼 있습니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22일 기자회견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감이 종료되면 국감 과정에서 있었던 불출석과 위증에 대한 행태를 종합해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