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일 출신인 이 전 의원은 1955년 포항 동지상고와 196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9년 미국 캠밸대 명예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1년 코오롱 1기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뒤 17년 만에 코오롱 대표, 코오롱상사 대표 등을 역임했다. 산업화 초기 주력 산업이었던 섬유 회사에서 기틀을 다지고 수출을 주도한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했다.
2011년 2월 18일 국회 본회의장에 나온 이상득 의원이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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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민주정의당 경북 영일·울릉 지역구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14대(민주자유당), 15대(신한국당), 16·17·18대(한나라당)까지 경북 포항남·울릉에서 연임했다. 의정 활동 중에는 국회부의장, 국회 운영위원장·재정경제위원장, 한일의원연맹회장, 한나라당 최고위원·원내총무·사무총장·정책위의장 등을 지냈다. ‘자원을 경영하라’는 책을 썼고, ‘국민훈장 동백장’과 ‘산업훈장 동탑훈장’을 받았다.
의원 시절 ‘미스터 위기 관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직전 국회에서 여야 이견으로 금융개혁법 통과가 어려워지자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으로서 “국가가 위기입니다. 우리 모두의 나라입니다. 통과시켜주시길 바랍니다”고 말한 일화가 있다. 2002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재임 시절 당 지지율이 급락하자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당시 박근혜 대표에게 천막 당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2006년 국회부의장으로 미국을 방문해 전시작전권 조기 반환 문제점 등을 알렸으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당정을 하나로 모았다. 2007년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위한 물밑 조율, 2010년 리비아 억류 요원 석방, 볼리비아 리튬 확보 등에도 관여했다.
유족은 아내 최신자씨, 자녀 이지형·이성은·이지은씨, 며느리 조재희씨, 사위 구본천·오정석씨가 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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