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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김 여사 리스크…108석 여당, 윤이냐 한이냐 선택 순간 오나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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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교분을 맺어왔으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인식 차이는 예상보다 컸다.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81분간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에선 현안을 바라보는 정반대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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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회동에서 지난 4일 국회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헌정 유린을 하는 특검법에 브레이크를 걸어줘 다행이고, 한 대표가 나서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대표는 “당시 의원 30명 정도를 설득해 막았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면 막기 힘들어진다”며 대통령실의 선제적이고 과감한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만약 당 의원들의 생각이 바뀌어 야당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면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며 “우리 당 의원들을 믿는다”고 했다.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윤 대통령과 ‘이대로는 안된다’는 한 대표의 입장차가 단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앞서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촉구한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요구 사항’을 두고도 둘은 정면충돌했다. 한 대표는 이른바 ‘한남동 라인’으로 알려진 대통령실 전·현직 참모의 실명과 문제점을 거론하며 교체를 요구했으나, 윤 대통령은 “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정리한다”면서도 “이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문제를 야기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사실상 거부였다.

김 여사의 활동 중단 문제를 두고 한 대표는 대외 활동 중단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방식을 제안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미 스스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 의혹에 대한 규명 협조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이미 일부 의혹의 경우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나와 내 가족이 무슨 문제가 있으면 편하게 빠져나오려고 한 적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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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한 대표는 대통령의 친인척과 대통령실 고위공무원의 비위 행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의 조속한 임명도 요청했다. 그간 여권은 이 문제를 국회 추천이 필요한 북한인권재단 이사 문제와 연계해 왔는데, 한 대표는 “그런 조건 없이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여야가 협의할 문제”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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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2일 인천 강화풍물시장을 방문, 박용철 강화군수와 함께 상인들에게 당선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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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1일 회동에서 갈등 해소의 계기가 아니라 양측의 입장차만 오롯이 확인되면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각자의 정치적 길을 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여태 단일대오를 유지해 온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도 균열이 보이는 거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7일 ‘명태균 의혹’을 추가한 세번째 특검법을 발의하고 추진 중인데, 대통령의 거부권 이후 재표결에서 여당 의원 8명이 이탈하면 특검법은 통과된다. 앞서 두번째 특검법에선 4명이 이탈했었다.

우선 친윤계는 전날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의 만찬 자리에 참석한 추경호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겠다는 생각이다. 한 친윤계 인사는 “지난번 재표결에서도 찬성을 찍은 건 2명에 불과하다. 원내지도부가 단속하면 재표결 가결 같은 참사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 역시 “여사 문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1심 선고(11월 15일) 이후에 논의해도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본질적으로 정치공세인 만큼, 야당의 아킬레스건인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가 현실화되면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날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어처구니없는 정치 공세에 대해선 당에서도 같이 대응해 달라”고 한 것 역시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친한계는 이재명 리스크와 관계없이 김건히 리스크 해소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반란표가 더 나와 ‘민주당 마음대로’ 특검법이 가결되면 여권 전체가 수사 대상이 되고, 어렵사리 부결시켜도 ‘김건희 방탄’ 프레임에 갇혀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해진다”(친한계 지도부 관계자)는 것이다. 그래서 친한계 일각에선 “차라리 공정한 특검법을 먼저 내놓자”는 주장마저 검토된다. 이미 순직해병 특검법때 논의됐던 대법원장 등에 특검 추천권을 주는 ‘제3자 특검법’을 김건희 특검법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아무리 개선된 특검법안이라도 여당 대표가 대통령 부인 문제를 야당에 제안하는 모양새는 부담 요소다. 여권 관계자는 “자칫하면 이재명의 손을 잡는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균열이 단순히 특검법 처리를 넘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분화의 시작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대표가 오랫동안 공들여 제안한 기조 변화를 윤 대통령이 거부한 상황에서, 108석 여당 전체가 ‘윤석열이냐 한동훈이냐’의 질문 위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 대표 입장에서는 윤 대통령의 변화는 못 끌었어도 보수층에 ‘최선을 다했다’는 이미지를 보였다”며 “향후 여권의 분열이 가속화되면,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두 개의 야당을 상대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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