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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노트북을 열며] 은행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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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기환 경제부 기자


은행 대출 창구가 서늘하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3년 2개월 동안 유지한 기준 금리(3.5%)를 3.25%로 끌어내렸는데도.

한은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은 바다를 한창 달리던 거대한 배가 뱃머리를 거꾸로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 경제 전반에 무차별 파장을 미친다. 피벗 효과를 체감하려면 통상 6개월은 걸린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피벗은 오랜 기대에 못 미칠 전망이다. 대출 금리가 역주행(상승) 추세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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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창구에서 고객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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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변동 금리 하단 평균은 지난 6월 말 3.74%까지 떨어졌다. 피벗이 임박한 기대감을 탔다. 하지만 7~8월 20여 차례에 걸쳐 주담대 금리를 인상했다. 이달 18일 기준 주담대 금리 하단은 4.57%까지 올랐다. 앞으로도 당분간 대출 금리를 내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출 금리는 시장 금리에 은행이 매긴 가산 금리를 더한 뒤 각종 우대 금리를 빼 정한다. 시장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중앙은행 기준 금리를 내리면 대출 금리도 떨어져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은행은 가산 금리를 높이고 우대 금리를 낮추는 방식으로 대출 금리를 인상해 왔다. 한은보다 더 센 ‘관치(官治) 금리’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7월 2일 내부 회의에서 “은행의 무리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다음 날 17개 은행 임원진을 불러 “대출을 늘리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달라. 현장 점검에 나서겠다”고 압박했다. 관치에 닳고 닳은 은행은 정부 정책을 일사불란하게 실행하는 ‘은행청’처럼 움직였다.

대출 혼란을 부른 관치는 사과로 1막을 내렸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달 10일 “정부 정책 때문에 불편을 겪은 국민께 사과드린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가계대출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금감원장 사과를 대출 금리를 내려도 좋다는 신호로 읽은 은행은 없을 것이다. “금감원은 전면에 나서지 않을 테니, 가계부채 문제가 터지면 은행에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에 가깝다.

관치의 반전이 남았다. 5대 시중은행의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가계 예대금리차(예금·대출 금리의 차이)는 평균 0.57%포인트를 기록했다. 7월(0.434%포인트)보다 0.136%포인트 확대됐다. 시장 자율에 맡긴 예금 금리는 내렸는데, 관치에 따라 대출 금리를 올린 결과다. 예대금리차가 벌어질수록 은행 수익은 커진다. 은행권은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대한다. 아무래도 ‘이(관치) 또한 지나가리라’, 납작 엎드린 은행이 최후 승자다.

김기환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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