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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단독] ‘문학사상’ 다시 존폐 기로…부영, 재창간호 인쇄 직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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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문학사상’ 10월호 표지(619호, 재창간 기념 특대호).


52년 전통의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의 10월 재창간을 약속했던 부영그룹의 계획이 돌연 무산됐다. ‘제2창간’을 위해 고용된 임직원 6명은 지난 10일자로 모두 사임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쪽이 ‘메세나 정신’(공공기관이나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을 홍보하며 폐간 위기였던 ‘문학사상’의 출판권을 인수한 지 100일도 안 돼 ‘손절’하는 모양새다. ‘문학사상’은 다시 존폐 기로에 내몰렸다.



이 회장 쪽은 경영난으로 5월부터 발간을 중단한 ‘문학사상’의 출판권을 지난 7월 말 ㈜문학사상으로부터 인수하며 “10월 제2창간호로 속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이 사재로 설립한 우정문고는 고승철 전 동아일보 출판국장을 새 사장으로 한 ‘문학사상’ 재창간 조직으로 확대됐다. 3천부 출판을 계획하고는, 전례 없이 470여쪽으로 두툼하게 구성한 ‘문학사상’ 재창간호(619호)의 표지·목차를 지난달 말 공개하며 온라인 서점에 홍보했다. 출판사는 “월간 ‘문학사상’이 다시 새롭게 출발한다”며 “이번 10월호는 재창간 기념 특대호로, 우정문고·문학사상의 의지를 한데 모았다. 화려한 과거를 계승하면서 야심 차게 새로움을 추구하겠다”고 소개했다. 재창간 기념호에는 소설가 권지예·김별아·김숨·이경란·강만수·고은주·복거일의 소설, 강은교·이영광의 시 등이 실렸다. 황석영 작가와의 특별 대담도 실렸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부친 한승원 작가의 축사도 창간호에 담겨 있다.



하지만 사전 홍보까지 했던 재창간호는 인쇄 직전 중단됐고, 본인쇄 전 시험 인쇄한 20부도 폐기됐다. 한겨레가 복수의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 이 같은 상황 급변에는 잡지 운영에 따른 적자 예상 폭에 대한 이 회장의 판단이 달라진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 인사는 한겨레에 “메세나 활동으로 문예지를 운영하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이 회장 쪽은) 수년간 적자가 예상된다고 자주 언급했다”며 “최근 이 회장 쪽이 재창간팀에 사업 독립하면 1년간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그 경우 1년 뒤 또 폐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어 재창간팀이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에선 이 회장이 정치적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이 회장은 당초 ‘문예지 적자경영을 예상하면서도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추진한다’는 뜻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적자 예상 폭을 이유로 중단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2020년 8월 횡령·배임 혐의로 실형 확정 뒤,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2023년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지난 8월 대한노인회 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21일 취임했다. 재창간호에 특별 대담이 실릴 예정이었던 황석영 작가는 올해 4월과 9월 두차례 윤 대통령의 “즉각 사임” 내지 “정권 퇴진” 선언에 나선 바 있다.



재창간팀이 와해된 상태라 현재로선 향후 재창간호 자체를 내다보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고승철 전 사장은 한겨레에 “지난 10일자로 저도 회사를 나온 상황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적절치 않다”며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으로, 작가들께는 사과문과 그분들 원고의 교정쇄를 편지로 발송했다”고 말했다. 부영그룹 홍보 담당자는 한겨레에 “복간 준비를 급하게 하다 보니 보완점이 생겨서 지연되고 있다”며 “중단이 아니며 정치적 이유도 없다”고 해명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겨레

인터넷 서점에 소개된 ‘문학사상’ 10월호의 주요 내용.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재창간사’도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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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터넷 서점에 소개된 ‘문학사상’ 10월호 목차. 이달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부친인 한승원 작가의 축사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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