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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제2 우크라 될라" 몰도바, 개표 이변에 커지는 서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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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일(현지시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치러진 몰도바의 EU 가입 국민투표와 대선 투표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2살 난 아들을 들고 기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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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국가 몰도바에서 20일(현지시간)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 예상과 다르게 유럽연합(EU) 가입 반대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도 마이아 산두 현 대통령이 예상보다 적게 득표해 친러시아 성향 후보와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산두 대통령 집권 후 4년 넘게 이어 온 강력한 친서방 정책에 큰 변화가 일 가능성이 커졌다.



여론 뒤집고 EU 반대 우세 , 친러 후보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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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몰도바 흐루세보에서 치러진 EU 가입 국민투표와 대선 투표에서 한 여성이 투표용지를 들고 기표소에 들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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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BBC 등에 따르면 몰도바는 이날 헌법에 'EU 가입 추진'을 표시할지 묻는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개표율이 약 95%를 넘긴 상황에서 반대 52%, 찬성 47%로 반대 의견이 앞서고 있다.

같은 날 치러진 대선에선 개표율 96% 상황에서 산두 대통령이 40.86%를 득표해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직 검찰총장으로 친러 진영의 대표 주자인 알렉산드르 스토야노글로 후보(26.95%)가 예상 밖으로 선전하면서, 다음 달 3일 두 후보 간 결선투표가 실시될 전망이다.

두 선거 모두 투표 전 여론과 실제 결과의 차이가 컸다. 선거 직전 벌인 여론조사에서 EU 가입 찬성 여론은 63%대였다. 대선 역시 직전 여론조사 결과에서 산두 후보는 36%, 스토야노글로 후보는 10%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현 대통령 “친러 정치인 선거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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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몰도바 키시나우에서 마이아 산두 대통령이 이날 치러진 선거에서 부정한 선거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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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전부터 러시아의 개입을 경고했던 산두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몰도바가 민주주의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받고 있다”며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범죄 집단이 우리 국가 이익에 적대적인 외국 세력과 결탁해 수천만 유로의 돈과 거짓말, 선전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했다”며 “이 범죄 집단이 30만표를 매수하려 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달 초 몰도바 당국은 현재 러시아에 거주 중인 친러계 망명 정치인 일란 쇼르가 조직한 대규모 매표 계획을 적발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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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러시아 선거개입설엔 서방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13일 “러시아가 자국 언론사 ‘RT’에 정보부대 요원을 배치해 몰도바 선거 결과를 조작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지난 15일엔 노르웨이·덴마크·라트비아 등 북유럽·발트해 8개국 외교장관이 몰도바 내에서 러시아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흑색선전에 공동 대처한다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반면 러시아는 선거개입 주장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선거 결과 따라 러시아 지정학 입지 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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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몰도바 키시나우의 한 기표소에서 알렉산드르 스토야노글로 대선 후보가 기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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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이 몰도바 선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이 나라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몰도바는 옛 소련 해체 후 독립한 뒤 친서방과 친러 정권이 번갈아 집권했다. 2020년 취임한 산두 대통령은 강력한 친서방 노선을 고수하며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와 서방 사이 완충지대 역할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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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만약 결선투표에서 산두 대통령이 예상치 못한 패배를 겪을 경우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우군(友軍)을 잃고, 러시아로선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 BBC는 “각각 13%, 5%, 4%를 득표한 3~5위 후보가 스토야노글로를 지지한다면 산두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할 수 있다”고 전했다.



루마니아 형제국, '제2 우크라'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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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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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50만명의 몰도바는 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서쪽으론 EU·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루마니아와 인접해 있다. 민족 구성의 약 80%를 차지하는 몰도바인은 기본적으로 루마니아인과 같은 민족이어서 루마니아와는 ‘형제 국가’로 통한다. 몰도바 공용어도 루마니아어다. 다만 1812년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의 제후국이었던 이곳(몰다비아 공국) 일부를 점령한 후 러시아 영향권 내에 있었다. 지금도 루마니아와 몰도바에선 통일 의견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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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우크라이나와도 공통점이 많다.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있으면서 친서방과 친러 세력이 대립 중이다. 몰도바 영토의 13%를 차지하는 동부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아예 친러 세력이 독자 통치를 하는 미승인 국가다. 지금도 러시아군이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주둔 중이다.

이 때문에 몰도바가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지역(돈바스) 보호’를 명분 삼아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서방세력 침투에 위기감을 느끼는 푸틴이 같은 구실로 몰도바를 다음 침공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CNN 방송은 “이번 두 선거가 몰도바 역사상 가장 결정적 선거”라며 “몰도바가 친서방과 친러 노선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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