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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한국상담심리학회] 자살로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은 자의 삶을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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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윤미 한국상담심리학회 법인이사 (전 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모든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네 가지의 실존적 사실을 죽음, 자유, 소외, 무의미라고 한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정답이 있는 틀을 원하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고 각 개인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 하더라도 누구나 어느 지점에서는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 말하자면 아무리 가까워도 대신 아파줄 수도 대신 죽어줄 수도 없다고 본다면 궁극적으로 각 개인은 소외되어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어 태어났을까, 의미를 찾고 싶지만 결국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바로 무의미라고 말하는 의미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죽음과 만나게 된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자연사뿐 아니라 전쟁, 화재나 홍수, 지진 등의 자연재해, 자동차를 비롯한 비행기, 선박 등의 교통사고, 치명적인 질환으로 인한 사망, 그리고 자살. 우리가 만난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대부분 죽은 자를 애도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남은 자는 살아있으니까. 물론 사회적인 차원에서 큰 사건 후 살아남은 생존자를 위해서는 트라우마로 인한 후유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2018년부터 부동의 자살률 1위 국가이다. 또한 자살은 한국 사회의 사망 원인 중 5위를 차지하고 있는 높은 사망 원인에 속한다. 우리 사회는 자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자살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처음 전문가에게 상담한 정신건강 문제 중 자살과 관련된 문제로 처음 상담한 비율도 1.3%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보건복지부·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2023. 「2023년 자살예방백서」)(OECD).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사회에서는 자살과 관련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이 관심이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생존자들에 대해서도 필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잠시 여기에서 특별한 원인의 죽음에 속하는 자살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자살자 유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나는 자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분들뿐 아니라 자살한 가족을 하늘에 보내고 나머지 생을 보내고 있는 자살자 유가족도 심리 상담소에서 만난다. 가족을 자살로 잃고 심리적 고통 속에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이다. 주변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다, 세월이 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그들 마음의 시간은 왜 이리 더디 가고, 빠르다던 세월은 왜 그리 천천히 흘러가는지, 정말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고통이 줄어드는지... 그 시간을 고통 속에서 어떻게 견디어 내란 말인지...

나는 그들의 심리적 아픔에 도움이 되고자 애쓰는 상담자 중 한 명이다. 고통이 아무는 기간 동안 힘이 되고 나머지 삶을 의미 있게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상담자로서의 내 목표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이별하고 상실한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만 자살자의 가족들도 함께하던 시간을 뒤로 한 채 살아가는 남은 삶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그들과 함께하는 나의 마음도 아프고 또 아프다. 자살로 이별을 경험한 가족들은 그 고통의 깊이를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 달리 했더라면 자살로 안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남은 이에 대한 배려 없이 어떻게 그리 무책임하게 떠날 수 있는지... 미움과 분노, 현실 부정, 죄책감 등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죽음을 부정하고 그리고 함께 했던 시간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그리움으로 남아 고통스럽다. 고통 속에 시간을 보내며 혼자 극복해 내려 애쓰지만 그 트라우마 경험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평생 많은 후유증을 남긴다. 기나긴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신체적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스트레스 질환, 불면과 공황 장애, 때로는 남은 가족마저 자살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 고통의 시간을 혼자 고스란히 감내하는 것은 너무 힘든 시간들이다. 주변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하다. 친지, 친구들이 그의 혼자 남은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 깊은 이해와 공감이 위로가 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만으로는 역부족일 때 보다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렇게 사람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돕는다고 접근하는 이들 중에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들의 고통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편취해 가는 이들도 있다.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는 특히나 이런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심리적 고통을 이용하는 이들에게 의존하다가 이용당한 것을 알고 나면 이러한 2차적 피해로 인해 더 힘들어진다. 역효과다.

고통스러울 때일수록 어떤 이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잘 생각해야 한다. 고통을 깊이 공감하며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중요한 부분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학회의 공신력 있는 학회의 자격증을 취득한 상담심리사가 그 중 하나이다. 심리상담의 전문가로서 이론과 실무 교육을 철저히 받고 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성을 인정받은, 이를테면 (사)한국상담심리학회의 상담심리사들이다. 주변의 도움만으로 부족할 경우, 혼자 어려움을 겪지 말고 전문가 상담을 활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고통을 딛고 남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최윤미 한국상담심리학회 법인이사/전 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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