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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리셋 코리아] 갈 길 먼 한국의 포용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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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리셋 코리아 개헌특별분과 위원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공저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교수, 사이먼 존슨 교수가 수상했다. 이들은 한 나라의 번영과 빈곤은 어떤 제도를 선택하는지에 달렸다고 본다. 번영과 빈곤은 인간이 바꿀 수 없는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적 선택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번영에 이르는 길은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를 결합해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포용적 정치제도가 포용적 경제제도를 만들고 상호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포용성장은 성장·분배를 조화시키는 OECD의 포용적 성장이나 지난 정부에서 논의한 포용국가론과는 관계가 없다.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이 포용성장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다수당·중앙에 권력 집중

규제·집단행동이 시장 질서 위협

의대 정원도 대학이 정하게 해야

중앙일보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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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한국을 북한과 대비해 포용적 제도를 선택해 경제발전을 이룬 모범적인 국가로 평가한다. 하지만 한국의 포용 제도는 초보 단계에 불과하다. 정치의 포용성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투표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권력이 한 기관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정치 주체에게 분산되고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권력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처럼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다. 장관들은 사실상 보조기관에 불과하다. 각 부처의 업무를 장관이 책임지는 책임장관제를 도입하고 국무회의가 합의제 의결기관으로 되어야 포용성이 증가한다.

입법 권력도 다수당에 집중되고 일방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이 당론을 실천하는 거수기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다. 양원제를 도입하여 지방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원과 전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하원이 견제하는 협력적 경쟁 관계를 형성해야 입법과정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다. 또 국민 비토권으로서 국민투표제를 도입해 국회의 전횡적 입법을 국민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도 중앙당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어 각계각층의 이익이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의 민주화와 분권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선거제도도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에서 공존의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여 의회 구성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

국가와 지방의 관계에 있어 권한과 재원이 중앙정부에 편중돼 지방자치에도 불구하고 다양성과 혁신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역 간 경쟁으로 아래로부터 혁신이 일어나고 지방 주도의 지역 발전과 균형 발전을 이루도록 획기적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포용적 경제는 사유재산제도와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법제가 정비되어, 누구나 시장에 참여하여 자유롭게 재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각종 규제나 집단행동으로 자유로운 시장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특정 집단이 진입 규제를 통해 부당한 초과이윤을 누리고, 자원 배분이 왜곡된다. 정부와 결탁하거나 정부를 포획한 집단이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 이기적 지대 추구가 국가 발전과 혁신을 저해하는 한국병이 되고 있다. 과감한 규제 개혁과 분권화로 창조적 파괴와 변화가 아래로부터 가능하도록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의대 정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도 전형적인 지대 추구의 한 단면이다. 의사 부족 현상은 의대 정원 결정권을 교육부가 독점하고 의사집단이 교육부와 관계 부처를 포획하여 정원을 동결하도록 해 온 결과이다. 국가의 과도한 규제와 의사 집단의 지대 추구의 합작품이다. 윤석열 정부도 국민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는 의사단체의 집단행동에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의대 정원은 대학이 자율로 학칙을 통해 의대를 신설·증원할 수 있도록 하는 분권화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지역의료 필수 인력도 지방 정부인 시·도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넘겨야 한다. 5000명 의대 증원을 발표한 독일에서 의사 단체나 의사 노조가 이를 지지하는 건 의대 정원을 주 정부와 대학으로 분권화했기 때문이다.

독일 경제장관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주도했던 에르하르트는 ‘모두를 위한 번영’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국가의 불필요한 시장 개입을 철폐하고 모든 경제 주체가 시장질서에 참여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세계 선도국가로 가는 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리셋 코리아 개헌특별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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