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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한국의 동물 정책, 사자성어로 표현 한다면 [고은경의 반려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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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강원 화천군의 한 사육곰 농장에서 곰 두 마리가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는 곰들을 구조해 화천군에 위치한 임시보호시설로 옮겼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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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2025~2029년), 개 식용 종식 기본계획, 야생동물 백색목록제도···.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동물 정책은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람 살기도 어려운 마당에 동물 정책이 웬 말이냐'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물이 살기 좋은 사회면 사람도 살기 좋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동물 정책이 추진되는 건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사육곰 사업을 장려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사육곰을 위한 보호시설(생크추어리)을 만들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수십 년을 미루던 개 식용 종식은 이제 농가에 전업을 유도하고 있다. 더 이상 수족관은 새로운 돌고래를 들여올 수 없고, 수입 가능한 야생동물 목록을 정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동물 정책 목표와 취지는 다 좋다. 하지만 현장에서 시행되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으면 평가를 내리기 어렵고, 걱정이 앞선다. 현장에서 제대로 준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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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한 개농장의 뜬장 속 개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한국HS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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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한 '곰 사육 종식 이행계획'에 따라 사육곰 산업은 2026년 1월부터 사라지게 된다. 연내에는 전남 구례군에 49마리가 들어갈 보호시설도 세워진다. 하지만 아직도 어떤 곰이 들어갈지, 남겨지는 곰은 어떻게 할지, 또 곰 매입은 어떤 돈으로 할지 정해진 게 없다. 시설이 세워져도 정작 다 채우지 못하는 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개 식용 종식은 어떤가. 정부는 46만6,000마리로 추산되는 개농장 개들의 안락사 가능성에 대해 "절대 그럴 계획은 없다"라고 밝혔지만 이들을 보호할 공간도, 입양할 이들도 충분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더욱이 개농장에서 많이 길러지고 있는 도사견은 맹견으로 분류돼 있는데, 정부가 맹견사육허가제와 기질평가제를 서둘러 도입하면서 이들의 입양길은 더 막히게 됐다.

버려지는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준비 중인 백색목록 평가 기준에서는 정작 '동물복지'가 빠진 채 추진되는 것을 놓고도 논란이다. 제도의 취지 자체가 야생동물의 습성을 고려해 기를 수 있는 최소한의 동물만 허가한다는 것인데 동물의 '삶의 질' 보장 여부를 평가 기준에서 빼면서 수입을 허가한다면 취지를 되레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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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동물원 속 피부병변이 관찰된 프레리도그. 동물자유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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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류된 지 2년이 됐지만 소식이 끊긴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가두리에 있던 모습. 해양수산부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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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에서 살다 제주 앞바다로 방류돼 소식이 끊긴 남방큰돌고래 '비봉이'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달 16일은 비봉이가 방류된 지 2년 된 날이었다. 수족관 돌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대의명분 아래 정작 비봉이가 야생에서 적응하기 어렵다는 우려는 깡그리 무시됐고, 사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정부는 백서 발간을 미루며 결과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다.

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정책도 있다. 앞서 언급한 맹견사육허가제와 기질평가제의 경우 견종으로 구분해 맹견을 지정하고, 획일적 기준을 적용해 공격성을 촉발하는 식의 평가 방법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지만 결국 시행됐다. 맹견을 기르는 이들은 이달 26일까지 기질평가를 거쳐 사육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홍보 부족과 비용 문제 등으로 정작 신청률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 동물 정책을 적확하게 표현한 사자성어를 찾았다. 은 높으나 솜씨는 서투르다는 뜻으로 이상만 높고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인 '안고수비'(眼高手卑)다. 목적이 좋아도 정책이 '무용지물'(無用之物)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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