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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일)

“핵 보유국들이 벌이는 ‘두 전쟁’... 80년 전 우리 같은 피해자 또 나올까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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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피폭자단체 노벨평화상 수상… 한국인 피폭자들을 만나다

조선일보

정원술(81)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이 지난 15일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1996년 회관 설립 당시 일본 종교 단체 '태양회' 후원으로 세워진 위령각엔 먼저 세상을 떠난 1220여 명의 '한인 피폭 1세' 위령패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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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 왔으니 이대로 잘살자 경남아. 참아줘서 고마워’ ‘강화자 사랑하(한)다. 건강해라’…. 지난 15일 방문한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복지회관 1층 벽면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그림 편지 29장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회관 관계자는 “(이곳에 머무는) 어르신들이 올여름 한글 공부 시간에 쓴 ‘나에게 보내는 연서(戀書)’”라고 했다.

어르신들이 어릴 때 미처 못 배운 한글을 배우는 기관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복지회관은 다른 기관과 다르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일본에 머물다 피폭된 피해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피폭 당시 대부분 아기나 어린이였다. 과거 피폭자들은 전염병을 옮긴다는 등 비과학적인 이유로 차별받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강정자야, 공부한다고 수고맛(많)타. 행복하여라’ 같은 편지를 보며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한참을 먹먹하게 서 있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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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복지회관 1층 벽면에 붙어 있는 그림 편지들. 이 복지회관엔 1945년 미군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피폭된 한국인들이 산다. 이들이 올여름 쓴 '나에게 보내는 연서'엔 ‘잘 살아 왔으니 이대로 잘살자 경남아. 참아줘서 고마워’ ‘강화자 사랑하(한)다. 건강해라’ 등이 적혔다./합천=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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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일본 피폭자 단체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피단협)’가 선정된 지난 11일, 타국 단체의 수상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한 이들이 한국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법 시행으로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끌려갔다가 1945년 원폭 피해를 겪은 한인 피폭 1세들이다.

당시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피폭된 한국인은 총 10만명(일본 내무성 집계)에 달한다. 절반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생존한 5만명 중 4만3000여 명이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왔다. 이들은 일본 정부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1967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결성했다. 1990년 한일 정부가 한국인 피폭자 지원에 합의한 후 일본 정부가 40억엔(약 366억원)을 지원해 복지회관이 세워졌다. 건립 당시 110여 명이 입주했다. 지금은 67명이 남았다. 생존자 대부분은 80~90대로 피부병, 기관지 질환 등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며 산다. 20여 명은 거동을 거의 하지 못해 침상에 누워 여생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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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술(81)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이 지난 15일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복지회관 자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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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술(81)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도 1943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한인 피폭 1세다. 그의 부모는 히로시마 군수 공장에서 물품을 운송하는 일을 했는데, 원폭 투하 당일 가족 모두가 도심과 먼 자택에 머물러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날 만난 정 회장은 “피단협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듣고 한참을 진정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름과 활동 지역만 다를 뿐, 같은 참상을 겪었던 형제 같은 단체예요. 일제의 (조선인) 동원령과 강제 노역, 인권 탄압에 피폭까지…. 그렇게 80년 가까이 쌓여온 아픔이 조금이라도 위로받는 것 같아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정 회장은 “나이가 들며 기억력은 줄어드는데 그때의 일은 잊히지가 않는다”고 했다. “1945년 8월 6일 피란을 위해 집을 나서는데, 히로시마의 강물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던 모습이 기억나요. 훗날 부모님에게서 들었는데 (피폭으로 인한) 열기를 식히겠다고 너도나도 강물에 뛰어들어 온통 핏물 천지가 됐던 거였죠. 지금까지 그 모습이 안 잊힙니다.”

회관 뒤엔 25㎡ 정도 되는 공간에 팔뚝만 한 나무판자가 촘촘히 세워진 공간이 있었다. 원폭 희생자 위령패 1220여 개가 들어선 위령각(慰靈閣)이다. 남은 자리는 200~300개로, 지금 한국·일본 등에 생존해 있는 한인 피폭자는 1694명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최근 경남도 지원으로 회관 앞 부지를 얻어 내년 착공을 목표로 확장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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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찾은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엔 제주 삼다수 등 한국인 방문객들이 사온 음료들이 놓여 있었다./히로시마=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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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 회장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전쟁’ 이야기도 꺼냈다. 이번 달로 2년 8개월째에 접어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발발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러시아, 이스라엘 등은 ‘핵보유국’ 아닌가요. 이들이 가진 핵무기는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폭보다 위력이 수배는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그저 80년 전 우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명들이 핵전쟁의 피해를 입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피단협의) 노벨평화상 수상도 이러한 메시지를 세계에 우회적으로나마 발신하려는 의도가 아닐까요.”

한인 피폭 1세대의 자손들은 2010년 ‘합천 평화의 집’이란 단체를 별도로 차려 핵무기 사용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와 평화의 집은 지난 15일 피단협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성명에 이렇게 썼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인류 생명과 평화를 파괴하는 전쟁, 한순간 수많은 생명체를 앗아가는 핵무기 사용이 인류 역사에 더는 기록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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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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