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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낙엽이 지기 전에…독일 빌헬름 황제와 남북의 ‘치킨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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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열병차량을 타고 국군 부대를 사열하며 고위력 미사일 ‘현무-5’ 앞을 지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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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오웰은 1930년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겪은 혼란과 배신, 분노를 이 작품에 생생하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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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긴장이 높아진 한반도 상황과 윤석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언행을 보고 있으면, 조지 오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윤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 ‘병역 미필‘인 두 사람은 여러 가지가 비슷하다.



메시지의 논리 구조가 같다. 상대가 ‘핵 무기나 무력사용을 기도한다면’이라고 가정한 뒤 그럴 경우 상대를 끝장내 버리겠다고 경고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하면 그날이 북한 정권 종말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지난 4일 북한군 특수부대를 방문해 “(한미가) 북한 주권을 침해하는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든다면 가차없이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공격력을 사용할 것”이라며 “그러한 상황이 온다면 서울과 대한민국의 영존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데 김 위원장도 지난달 9일 북한 정권수립기념일 연설에서 “강력한 힘, 이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말했다. 분단 이후 남북한이 서로를 증오하지만, 증오하는 만큼 닮아가는 ‘적대적 공존’이 윤석열-김정은 사이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11일 ‘평양 무인기 침투’ 이후 남북 당국자들은 상대의 종말을 경고하는 시퍼렇게 날이 선 말 폭탄을 주고 받고 있다. ‘이러다 전쟁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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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서부지구의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현지시찰하시면서 전투원들의 훈련실태를 료해하시였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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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3일 “북한이 자살을 결심하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단언했지만 시민들의 걱정은 여전하다.



윤석열 정부는 ‘평양 무인기 침투’와 관련해 국가위기관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이란 기본 원칙을 무시했다. 북한은 대한민국이 평양 상공으로 무인기를 침투시켰다고 주장하나, 합동참모본부(합참)는 “북한 주장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속한 보고, 정확한 정보공개로 국민과의 소통, 추가 위기 발생을 억제하는 노력은 사라졌고, 전쟁 불안감과 군에 불신은 커졌다.



윤석열 정부는 안보 위기 때마다 ‘일전불사의 결기’를 강조할뿐 위기관리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특히 대통령의 발언은 가장 강력한 위기관리 수단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는 ‘북한 정권 종말’을 남발하고 위기 증폭에 치우쳤다.



최근 윤 대통령, 김 위원장의 언행을 보고 있으면 ‘국가 지도자의 오만 오판이 전쟁을 부른다‘는 미국 국제정치학자 존 스토신저의 주장이 떠오른다. 스토신저는 1975년 펴낸 ‘전쟁의 탄생: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에서 20세기 이후 8개 주요 전쟁을 분석해, 정책결정권자인 국가지도자의 성격과 현실 인식이 전쟁 발발을 좌우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국가지도자의 오판을 강조하고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지도자의 오판은 4가지 방식으로 이뤄지고 상호작용을 한다고 스토신저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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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주장한 평양 상공에서 대북전단 살포하는 무인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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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신의 힘에 대한 과신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단기 결전에 의한 승리를 장담한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인 1914년 8월 초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들에게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황제의 장담과 달리 1차 세계전쟁은 4년 넘게 끌었다. 약 1천만명이 죽고, 2천만명이 다쳤다. 요즘 남북 지도자들이 주고받는 ‘압도적 대응으로 정권 종말’이란 상호 위협은 “낙엽이 지기 전에”란 독일 빌헬름 2세의 허세를 연상시킨다.



둘째는 상대에 대한 불신이나 멸시로 객관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최근 남북은 상호경멸과 증오를 쏟아내고 있다. 신원식 실장은 “북한이 지난 1일 우리 국군의 날 기념식 행사 이후 전례 없이 과민 반응하고 있다. 그 직전 이스라엘의 벙커버스터(지하로 뚫고 들어가 터지는 폭탄)에 의해 헤즈볼라 수장이 죽임을 당했는데 (국군의 날 공개된) 초위력 미사일 ‘현무-5’는 10배 이상의 위력으로, 김정은이 섬뜩함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을 두려움에 떠는 ‘쫄보’ 취급했다. 북한은 ‘북한 정권 종말’을 언급한 윤 대통령을 ‘괴뢰’라 지칭하고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깎아내렸다. 평양 무인기 이후 북한 관영언론에는 ‘망나니들은 씨종자도 남김없이 쓸어 버려야 한다’ 같은 섬뜩한 대남 발언들도 무더기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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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15일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군 감시 장비에 찍힌 경의선(왼쪽),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 장면. 합동참모본부 제공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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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상대가 먼저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한미연합훈련을 두고 한-미는 방어적 ‘방어적 성격’이라고 하나 북한은 ‘북침연습’이라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네 번째로 상대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지난 3일 국군의날 행사에 대해 ‘허무한 광대극’이라고 평가절하고 당시 행사에서 첫 선을 보인 지대지미사일 ‘현무-5’에 대해서는 ‘거대한 달구지’라며 조롱했다.



최근 남북 지도자의 언행은 ‘치킨호크’(Chickenhawk)를 연상시킨다. 치킨은 겁쟁이, 호크는 강경파를 뜻한다. 미국 신문 ‘뉴햄프셔 가제트’는 치킨호크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남성 공직 인물로서, 첫째 정치적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동시에, 둘째 개인적으로 전시 병역의무를 한사코 피하려는 인물.” 오웰의 말을 빌리면, 치킨 호크는 자기는 직접 싸우지 않으면서 증오를 쏟아내는 사람이다.



스토신저는 전쟁을 감행하려는 자에게 ‘정확한 현실 인식은 전쟁을 회피하게 하고 잘못된 인식은 전쟁을 서두르게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던진다. 일전불사를 외치는 남북의 치킨 호크가 새겨볼 대목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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