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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평양의 무인기가 말해주는 것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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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한 외무성은 11일 저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중대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은 지난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를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 삐라(대북 전단)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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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평양 상공에 나타난 북한 무인기를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나온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평양의 가장 번화한 구역 바로 위에 전단을 실은 무인기를 날려 보냈을까.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자 용산 대통령실은 이를 추가로 설명하면서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대”를 강조한 바 있다. 확성기 방송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킨다는 취지다. 이 발표가 있고 나서 정부나 민간단체가 풍선만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더 많은 전단과 물품을 보내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얼마 전 탈북 단체는 바람의 방향이 맞지 않자 강물에 전단과 물품을 실어 북으로 보내는 새로운 수법도 보여주었다. 그러니 무인기에 전단을 실어 보내는 아이디어쯤이야 충분히 나올 법하다. 더 과감하고 다양하게 북한에 전단을 보내라고 민간단체를 격려하고 고무하는 정부 역할을 간과하고 이번 사태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민간 탈북 단체가 무인기를 보냈더라도 이는 정부와의 협력 속에서만 가능하다. 촘촘한 감시망이 있는 군사분계선을 관통하는 비행체를 군이 묵인하거나 안내하지 않는다면 민간단체가 어떻게 평양 상공을 농락하는 고도의 작전을 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무인기 자체보다 살포된 전단지다. 어쩌면 이번 사태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누가 만든 무인기냐보다 누가 만든 전단지냐를 확인하는 데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국군 심리전 부대들은 대북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고 방송하는 심리전에 착수한 상태였다. 특히 지난해부터 심리전 부대가 확성기뿐만 아니라 다량의 전단을 제작하여 비축하기 시작했다는 제보가 필자에게도 도착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이번에 평양에 살포된 전단지가 보존 상태가 깔끔하고 표현 수위도 통제되어 있다는 점은 군의 비축용 전단지는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들게 한다. 남은 국정감사 기간에 야당 의원들은 국군 심리전단의 전단 제작과 비축 실태를 정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필경 군에서 이 전단을 제작했다면 국군 인쇄창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민간단체의 전단 제작에 정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런 일련의 전개는 무엇을 말해주나. 탈북 민간단체는 윤석열 정부의 통일 전쟁에서 용병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에 대해 정부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민간단체가 정부의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하는 새로운 유형의 회색지대 전쟁(gray zone warfare)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다. 이제까지의 군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토를 방위하는 데 주된 임무가 있었으나 앞으로는 탈북자들과 합동으로 북한의 정권 교체와 체제 전환이라는 더 높은 수준의 임무를 수행하는 통일의 주력으로 전환될 조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정부의 통일 전략으로 촉발될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북한도 역시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예컨대 김포·인천공항에 다량의 풍선이나 드론을 날려 보내거나 서북 도서에서 위력적인 무력시위를 벌이면 과연 우리는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다음으로 정부가 통일 우호세력이라는 탈북자 민간단체나 외국의 제3세력을 과연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 2014년 10월에 탈북 단체의 전단 살포가 남북 간의 격렬한 교전으로 이어진 바 있다. 당시 대구 비행장에는 확전에 대비하여 F-15K 전투기가 공대지 미사일을 탑재하고 출동 대기 중이었다. 당시 김관진 안보실장은 군에 무한대의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기관총과 소총 수준에서 멈추었기에 망정이지 까딱하면 전쟁 날 뻔했다. 윤석열 정부가 10년 전의 상황을 재현하면서도 정작 국가의 위기를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이는 외환(外患)의 죄를 범하는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2025년 통일’이라는 망상이 권력 주변에서 확산되면서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출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다음은 무엇인가. 지금 남과 북이 전면전을 수행할 의도나 능력은 크지 않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이 일상화되면 그것이 바로 회색지대 전쟁이다. 올해 2월에 바로 그 이유, 즉 군사적 긴장으로 주가가 폭락했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서 여당은 선거에서 참패했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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