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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느리게 자란다고, 잘못은 아니잖아?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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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옐로스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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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기다려 주세요
사탕수수 기획, 이상미 글, 정희린 그림 l 옐로스톤 l 1만7000원



한겨레

수정일로부터 266일. 초음파 사진 속 작은 점과 미약한 태동으로 존재를 드러내던 아기가 실제 부모의 눈앞에 등장하는 데 통상 걸리는 시간이다. 결코 짧지 않은 이 시간을 부모는 기쁨 속에서 기다린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기다림은 고통이 된다. 아기의 뒤집기, 앉기, 서기, 걷기가 늦어지면 부모는 불안에 떨고 어느새 ‘아이의 느림=아이의 잘못’이 된다.



그림책 ‘우리를 기다려 주세요’는 느림을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어른들을 향한 아이들의 호소를 담은 책이다. 책에는 단추를 잘 끼우지 못하거나 유독 잘 넘어지고 다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넌 도대체 왜 그래?’ ‘그게 아니야라고 몇 번 말해!’ 느린 아이에게 쏟아지는 날카로운 말들이다.



이러한 말의 포화 속에서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을 경험한다. 한 아이는 커피를 내리고 그 위에 하트를 띄우는 라테아트를 천천히 손에 익히고 또 다른 아이는 목재를 성실히 매만지며 의자 같은 간단한 가구를 탄생시킨다. 느리지만 결국에 해내는 아이들은 말한다. “오래 걸려도 결국 해내. 나는 오래 연습해서 더 잘해.” “우리는 더디지만 매일매일 어른이 되어가고 있어.” “우리도 계속 나아갈 수 있어. 우리를 기다려 주세요.”



책에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이 책은 경계성 지능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은 배우는 속도나 반응, 응용력이 다소 느리다고 해서 ‘느린 학습자’라고도 불린다. 출판사 설명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3.6%가 느린 학습자라고 한다. 이들은 의사소통이나 사회적 관계 등에 어려움을 겪지만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아 사회복지 서비스가 제한된다. 어려서는 다른 친구들과 그럭저럭 어울리지만 청년이 되어 가면서 느리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기 쉽지 않다 보니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사회로부터 멀어진다. 이 책을 기획한 뜨렌비팜의 정현석 대표는 사회적 농장을 운영하다 느린 학습자 청년을 처음 만났고,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학습 자료 등을 살펴보다가 이러한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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