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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한강 첫 ‘일어 번역본’ 낸 지 15년…“일본의 한강 열풍 갑작스러운 것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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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가 15일 도쿄 지요다구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 있는 북카페 ‘책거리’에서 일본 내 한국 문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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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정수를 일본에 선보이려고 독서 노트를 꼼꼼히 적는데 첫 자리는 늘 ‘한강’이었어요.”



지난 15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진보초 고서점 거리에서 쿠온출판사와 북카페 ‘책거리’를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는 한강 작가에 대해 묻자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뛰어난 문체 안에 인간의 나약함과 깊은 슬픔을 그리는 세계관을 형성해 왔다”고 말했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1년 일본에 온 그는 한국 문학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2007년 한국 문학 전문 쿠온출판사를 세웠다. 2010년 처음 낸 한국 문학 서적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일본어판이었다.



그는 “첫 출간 때부터 일본 주요 신문들이 서평을 실어줄 만큼 ‘다른 수준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돌이켜 봤다. 지금까지 회사가 낸 120여권 책 가운데 한강 작가의 번역본은 ‘소년이 온다’(소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산문),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시) 등 네권이다. 다른 일본 출판사 3곳의 책을 포함해 한강 작가의 책은 모두 7권이 번역됐다.



‘노벨상 효과’는 톡톡하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 시중 서점 판매량과 별개로 출판사에 남았던 책 600여권이 두 시간 만에 다 팔렸다. 김 대표는 “책이 없어서 못파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서점 직원들은 걸려오는 전화에 “(한강 작가의) 책은 남은 게 없다. 한국에서도 예약을 받는 상황인데 여기도 마찬가지”라며 응대에 분주했다. 김 대표는 일단 2만부를 목표로 곧바로 중쇄 계획에 돌입했지만 책이 새로 나오기까지 열흘 이상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한강 열풍’은 단순히 노벨문학상 수상 때문에 갑자기 불어온 게 아니라는 게 김 대표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 문학의 밑바탕에 역사·문화·사회적인 이야기들이 깔린 경우가 많은데, 해외 독자들도 사변적이지 않고 현실에 발을 담근 그 특유의 묵직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어 그는 “일본에서 한국 문학의 인기 비결은 단순하다”며 “좋은 작품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판·문학인들이 오랜 기간 쌓은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김 대표는 최근 박경리의 ‘토지’ 20권 완역본을 내놨다. 토지문화재단과 일본어판을 내기로 한 뒤 10년, 첫 번역서 1∼2권이 나온 지 8년 만에 거쳐 이뤄낸 성과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 한국 문학의 저변만 넓어진 게 아니라 깊이까지 심화하면서 박경리 선생의 ‘토지’ 같은 책들도 내놓을 환경이 마련됐다고 본다”며 “출판사로서는 더 훌륭한 한국 작품을, 더 많이 내놓을 수 있다는 믿음을 독자에게 보여주려는 간절함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 30여명의 독자들과 19일 경남 통영 박경리 묘소를 찾아 일어판 ‘토지’ 헌정식과 출판기념회를 연다.



그는 한강 작가처럼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평가받기 위해서는 오랜 역량이 쌓인 번역의 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강 작가의 책 5권을 비롯해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카스테라’(박민규) 등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씨가 1990년대 초 한국에서 공부를 했어요. 그때 이미 일본어로 된 김지하, 윤흥길의 소설을 읽었더라구요. 누군가 이미 앞에 길을 닦아놓은 거죠.” 그가 주도하는 ‘케이북(K-BOOK) 진흥회‘가 해마다 ‘한국 문학 번역 콩쿠르’를 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 단편 소설 2개를 선정하면 한·일 시민 누구나 번역본을 출품하고, 당선 땐 책이 출간돼 번역가로 데뷔하는 시스템이다. 김 대표는 “많을 땐 한해 응모자가 200명을 넘는다”며 “책 하나에 일본어 번역본 200개가 생기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케이북 진흥회’가 공동 주최하는 ‘케이(K) 북 페스티벌’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다. 한국 문학과 일본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에 한국과 일본 출판사 각각 10곳, 35곳을 비롯해 작가·편집자·번역가들이 함께 하는 행사다. 김 대표는 “일본에 있는 한국 문학 독자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뜻으로 시작한 행사인데, 벌써 6회째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를 묻는 질문에 “한강 문학 뿐 아니라 한국 문학 저변 전체를 넓힐 엄청난 기회가 생긴 것”이라며 “여기서 출판사 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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