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6 (수)

금리인하 미스터리 : 물가는 정말 안정됐나 [마켓톡톡]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정연 기자]
더스쿠프

한은이 금리를 인하했지만, 물가가 그만큼 안정됐는지는 의문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은행이 오랫동안 이어져오던 '긴축의 시대'를 마무리했다.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3년 2개월 만에 3.50%에서 3.25%로 0.25%포인트 인하하면서다. 2%에 수렴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높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해 왔다. 고금리 정책은 물가를 끌어내리는 덴 효과적인 통화정책이다. 하지만 고금리 정책은 경기침체란 부작용을 양산하기도 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는 건 '물가는 안정됐지만 경기침체가 확산하고 있다'고 인식했다는 거다.

# 문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만큼 물가가 안정화했느냐다. 이창용 총재가 11일, 14일 자세하게 설명한 금리인하의 배경을 듣다 보면 물가안정을 확신했다기보단 경기침체를 더 많이 의식한 듯하다.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KDI가 경기침체의 원흉으로 지적해 온 '고금리의 시대'가 원하던 대로 막을 내렸지만, 우리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그렇다면 한은의 금리인하는 적절한 조치였을까. 물가는 정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걸까. 더스쿠프가 3회에 걸쳐서 금리인하가 과연 적합했는지, 효과를 상쇄하는 움직임은 없는지, 그래서 이제 경기침체를 막을 수 있는지를 살펴봤다.

더스쿠프

우리나라 물가지수엔 부동산 가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사진=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0.50%에서 0.75%로 올리면서 시작된 '긴축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 11일 낮아진 물가상승률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내리면서 우리나라는 다시 '저금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통화정책을 긴축(고금리)에서 완화(저금리)로 전환하는 판단을 내린 기준 시점이 된 9월 현재, 대한민국 물가는 정말 안정됐을까.

■ 이창용은 왜 확신 못 했나=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번 금리인하와 관련해 많은 설명을 내놓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후 기자회견을 가졌고,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선 위원들의 질문에 답을 했다. 그런데 이 총재의 말을 듣다 보면 과연 그가 '금리인하 시기가 지금이 맞다'고 확신했는지 의문이다.

이 총재는 11일 "물가상승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기준금리를 너무 오래 긴축적인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며 "경기가 과열됐다면 긴축적인 수준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내수가 회복 중이긴 하더라도 잠재성장률보다는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물가보단 경기침체 때문에 금리를 인하했다는 말로 풀이되는데 14일 국감장에서도 비슷한 뉘앙스의 설명을 되풀이했다. "올 상반기까지 거시경제 금융 현안 간담회(F4 회의)에서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안정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부동산과 가계부채가 올라가는 시점을 예측하지 못했다."

결국 이번 금리인하는 물가 불안 요소가 존재하지만, 일단 경기침체를 피해를 보려는 현실적 고민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호황인데 내수가 얼어붙은 데다, 자영업 등 영세사업자들을 시장에서 밀어낼 정도로 '경기침체'가 심각해서다. 나홀로 호황을 누리던 수출 대기업 중 몇몇도 한풀 꺾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물가만 보면 9월 금리인하가 적절했을까. 정부의 주장대로 물가의 방향이 하락 추세였던 건 맞다. 적어도 올여름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폭염이 찾아오면서 부동산 가격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부동산 물가 실종 사태=우리 경제의 물가 불안 요소는 올해 여름부터 시작된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가격의 이상 급등이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 8월 28일 한 인터뷰에서 "6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률은 연간으로 따지면 15%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의 심상치 않은 상승은 지난 6월 감지됐다. 5월까지만 해도 소수점 둘째 자리를 맴돌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의 주간 기준 상승률은 6월 둘째주에 0.10%로 상승하더니 7월 첫째주에는 0.20%로, 7월 둘째주에는 70개월 만에 최대 상승인 0.24%를 찍었다.

전국 주택으로 넓혀도 가격 급등 현상은 관측된다. 한국부동산원의 월별 주택 평균 매매가격은 전국·서울·수도권 모두 올해 3월까진 전월보다 하락했지만, 점차 오름세를 띠더니 8월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수도권 주택의 평균 매매가격은 올해 6월 5억6861만원에서 8월 5억7920만 원으로 꾸준히 올랐다. 서울도 5월 8억2279만원에서 8월 8억5014만 원으로 매월 상승했다.

주택 가격 급등 현상을 '수도권 아파트 문제'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수도권 전체 주택 매매 건수는 올해 2월 1만8916건이에서 8월 3만2776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2월 전국에서 팔린 주택 4만3491채 중에서 아파트 비중은 3만3333채였는데, 8월에는 전체 6만648건 중 4만7916채였다.

그런데, 한국은행 주요 인사들은 지난 9월 일제히 주택 가격 급등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하나같이 '물가'가 아닌 '금융시장 안정'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지난 9월 3일 "물가 안정 측면에서는 금리인하를 고려할 수 있는 시기지만, 금융안정 등을 봐서 어떻게 움직일지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해볼 때"라고 말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지난 8월 28일 "집값 상승은 가계대출과 직접적으로 이어지고, 금융안정에 위협을 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신성환 금통위원은 "집값이 소득 대비 올라가면 금융시장 안정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를 '금융시장의 안정'이란 측면에서만 검토하는 게 마땅할까.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주택 물가의 치명적 결함=우린 이 지점에서 앞서 언급했던 김웅 부총재보의 "6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률은 연간으로 따지면 15% 수준이다"는 말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만약 부동산이 아닌 '평균 가격 5억원 이상의 상품 가격'이 석달 동안 15% 급등하고, 거래량도 폭증했다면 중앙은행 주요 인사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때도 물가가 아닌 금융시장 안정이 문제라고 말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주택가격의 단기간 급등이란 이상현상은 우리나라의 물가지수에 사실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리 소비자물가지수에는 몇 가지 치명적 결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 우리나라 물가지수에는 부동산 매매가격의 단기 상승이 포함되기 힘들다. 한국은 2020년 이후 소비자물가지수를 개편하면서 거주비 가중치를 전세 5.40%, 월세 4.43%로 조정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거주비의 가중치는 전체의 9.83%로 현저히 낮다. 미국에서 주거비(shelter index)가 차지하는 비중은 월세 7.67%, 자가 주거비 26.76 등 전체 물가지수의 34%가 넘는다. 호주의 주거비가 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0%다.

둘째, 우리나라 물가지수는 전·월세 외에 자가주택 가격 상승분을 포함해도 현재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자가주택의 가격을 월세 임대료로 전환해 물가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월세 계약 체결 시세가 아닌 2~4년(계약갱신청구권 적용) 전 계약금액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자가 주거비 포함 물가지수와 한국부동산원, KB부동산 등의 통계가 번번이 어긋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실제로 통계청이 2022년부터 발표한 자가 주거비 포함 물가지수의 전월 대비 증가율은 7월 0.2%, 8월 0.3%, 9월 0.1%로 꺾였다. 하지만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주택 월세 가격 변동률, KB부동산의 월간 아파트 월세 가격 지수는 올 1월 이후 한번도 꺾이지 않고 8·9월까지 증가했다.

■ 한국·미국·호주 중앙은행의 온도 차=이 때문인지 '주거비 상승'에 반응하는 한국·미국·호주 중앙은행의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언급했듯 한은 주요 인사는 '주거비 상승'에 별 관심이 없다. 반면, 미국과 호주 중앙은행은 '주거비 상승'이 관측되면 발빠르게 금리를 통제한다.

더스쿠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관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최대 관심사는 9월에 2.4%까지 떨어진 CPI, 8월에 2.2%까지 내려온 PCE(개인소비지출)가 언제 물가 목표치인 2.0%까지 떨어지느냐다. 연준은 주거비 상승률이 지난 7월 5.13%에서 8월 5.21%로 상승하자 긴장감을 감추지 않았다. 9월 들어 4.85%로 내려오고 나서야 조기 달성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호주중앙은행(RBA)은 지난 9월 24일 정부의 압력에도 기준금리를 4.35%로 7회 연속 동결했다. RBA는 9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월세 광고를 보면, 향후 3개월 동안 월세가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호주 주택 가격은 9월에만 전월보다 0.4% 상승했고, 주택담보대출(1년 기준)은 7년 만에 최고치인 38.6% 증가했다. 호주는 미국·한국처럼 자가주택의 가격 상승을 임대료로 전환해 물가에 반영하지 않고, 실제 주택 가격 취득액의 등락을 반영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금리인하 미스터리 두번째 편 '기준금리 인하효과를 상쇄하는 변수들'에서 이어나가보자.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저작권자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