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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한강의 성취 뒷받침한 ‘번역의 승리’…세계인이 읽는 한국문학,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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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 김정효 선임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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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한국 문학 전문가들이 이번 수상의 의미를 짚고 이를 계기로 한국 문학의 나아갈 바를 진단하는 연쇄 특별기고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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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쁨과 흥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주말을 보냈다. 이제 차분히 노벨 문학상 수상 의미와 한국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시간이다.



여러번 이야기했듯이 노벨 문학상은 한국 문학이 거쳐야 할 중요한 관문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수상은 변방의 한국 문학이 중심부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한국 문학 해외 소개’,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넘어서 ‘세계 문학으로서의 한국 문학’의 장을 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은 작가의 뛰어난 작품 세계에 있다.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사유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성취”하였다. 한강은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 이후 더 깊고 확장된 세계를 보여주었다. ‘채식주의자’에서 채식을 선언한 여주인공을 통해 가정과 사회를 옭아매는 규범과 관습의 폭력을 매혹적으로 담아낸 이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통해 거대 권력에 의한 참혹한 비극 속에 희생된 개인의 연약함을 탁월하게 다룸으로써 한층 심화된 성취를 이룬 것이 평가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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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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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번역의 승리이다. 한 시대나 집단의 삶과 사유의 지형도라 할 수 있는 문학은 가장 온전하고 효과적으로 정신과 문화를 전달하고 이해시킬 수 있다. 다만 번역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주요 서구 언어문화와 근친성이나 공유점이 멀수록, 근대화가 늦은 주변국일수록 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즉 노벨 문학상 수상은 번역의 진화, 발전 단계와 정확히 맞물려 있는 것이다.



1992년 교보생명이 출연한 대산문화재단과 1995년 정부가 세운 한국문학번역원이 번역·출판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결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두 기관이 지원한 한강 작품의 번역서는 28개 언어 82종인데, 이는 1994년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직전의 17개국 79종과 비교해 볼 때 손색이 없다.



한국 문학의 번역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인 번역가 중심의 1세대 번역(~1990년대 초)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인과 한국어(문화)에 밝은 외국인 공동 번역의 2세대 번역(~2010년대) △도착어로의 표현능력이 뛰어나고 출발어 문화에 능통한 3세대 번역(2010년대 중반~) 과정을 거치며 발전해 왔다. 특히 3세대 번역가는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중심에 올려놓은 동력이 되었다. 최근에는 연간 200종 해외 출판, 세계적 수준의 선인세 2만달러를 받는 작가군 형성, 연이은 국제 문학상 수상, 현지 문학·출판계 주목과 독자층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었다.



번역원장 임기 3년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한국문학이 문학한류 도입기에서 문학한류 성장기로 진입했음을 진단하고 '봄'을 부르는 일에 가장 역점을 두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제비 한 마리를 부르는 것이 아닌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이라는 봄을 부르면 제비뿐 아니라 수풀이 우거지고 강물이 흐르는 생태계가 형성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언어권과 국가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번역 출판 지원, 번역·출판에 관한 모든 정보와 지원 사업을 종합한 플랫폼 케이엘웨이브(KLWAVE) 구축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강을 비롯한 황석영, 김혜순, 이승우 등 노벨 문학상에 근접한 두터운 후보군이 형성되었다.



한국 문학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일차적으로는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일원으로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번역, 출판 예산이 확충되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3세대 원어민 번역가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번역전문대학원 설립은 꼭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 문학 자체를 활성화할 정책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문학진흥정책위원회는 폐지되었고 문학·출판 분야 예산은 크게 줄었다. 다행히 내년 예산을 과거 수준으로 되돌린다고 하지만 유일한 번역 인력 양성 내년 예산안은 2022년 대비 반토막 났다고 한다. 무엇보다 “번역 대상 작품을 뽑는 데 작품성 비중이 높아서 문제다”, “번역 지원을 받은 해외 780여개 출판사 대상 판매량 조사가 81%만 이루어져서 부실하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헛발질이 다시 재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득 대산문화재단 설립을 위해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교보문고 입구에 역대 노벨상 수상자 초상화를 걸고 비워둔 한국인을 위한 자리를 채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대산의 말에 나는 그 일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래서 하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의지는 “예술·문화 지원은 결과 예측이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전문가들과 좋은 정책을 만들고 인내심을 가지고 일관되게 지원해야 한다”는 신창재 이사장의 운영 철학으로 이어져 지속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정책 수립, 그리고 인내심과 일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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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 시인·전 한국문학번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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