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변신한 서울 신흥시장./서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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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진희선 칼럼니스트] 남산 밑 해방촌에 가을이 찾아왔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하늘이 서서히 노을로 물들기 시작하면, 젊은 청춘들이 하나둘씩 신흥시장으로 모여들며 시장 골목은 부산해진다. ‘서울의 챙, 클라우드’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기존의 노후한 아케이드를 철거하고, 비닐 신소재인 ETFE 필름으로 만든 아케이드를 구름처럼 신흥시장 상공에 타원형으로 설치했다. 투명한 지붕은 눈과 비는 막아주되, 빛과 바람이 들어와 골목을 비취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 준다. 우중충한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환하게 바꾸며 시장의 활기를 더 해 준다. 쇠락해 가던 신흥시장이 MZ세대의 힙거리로 변신한 것이다.
오래된 구옥의 독특한 건물 안에 카페, 소품 숍, 맛집 등 즐길거리와 놀거리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야외인데 실내인 것도 같고, 골목길과 구옥들 사이에 비정형적으로 설치된 ‘클라우드’ 아케이드 기둥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70~80년대 감성이 묻어나는 가게들, 골목이 건물에 막혀 끝나는가 싶더니, 꺾어 돌면 다시 골목길이 열리는 신기한 마법의 동네는 엔틱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일반 꽃집 같은 작은 전시관이 있다. 조그마한 식물들과 초록빛의 사진들이 어우러져 발랄한 MZ세대의 감성을 자극한다. 카메라로 신흥시장에서 뿜어내는 독특한 분위기와 발랄한 감성을 담는다. 포토존이 따로 없다.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남산자락에 어두움이 내리면 여기저기 전등이 밝혀지고 연인들은 쌍쌍이 도심의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다보며 맛집과 카페에서 담소를 즐긴다.
신흥시장은 남산자락 남서향 사면에 자리한 해방촌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해방촌은 이름에서 보여지듯이 해방 이후 귀국한 동포들과 한국전쟁 후엔 실향민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신흥시장은 새롭게 부흥한다는 뜻으로 1960년대에 판잣집을 허물고 시멘트 건물을 여러 채 세운 뒤 지붕을 슬레이트로 이어 붙여 만들었다.
해방촌의 역사와 함께한 신흥시장은 지역의 다양한 향토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아우러져 이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 왔다. 80년대까지 마을 사람들이 생필품을 구하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만남의 장소,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해방촌의 유일한 시장이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지역 경제의 주축이었던 니트산업이 쇠퇴하면서 신흥시장은 사람 발길이 끊기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
2015년 필자가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해방촌 도시재생사업을 착수하기 위해 신흥시장 현장 답사를 갔을 때 일이 생각난다. 시장 상점의 2/3가 폐점되고 사람 그림자조차 찾기 힘들었다. 시장은 거의 철시되고 빈 가게와 조판만이 덩그렇게 놓여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낮인데도 햇빛이 별로 들지 않아 노란 전구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어두운 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해방촌의 오랜 역사적 흔적과 가치를 살리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도시재생의 목표였다. 마침 2000년대 이후로 도심이면서도 싼 집값과 임대료 덕분에 예술인과 청년들이 몰려들어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다양한 공동체 활동이 증가하였다. 해방촌 원주민과 문화예술, 청년창업인, 이태원과 인접한 외국인 문화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를 내는 해방촌의 미래상을 그렸다.
그 첫 번째 핵심사업이 바로 신흥시장 도시재생이었다. 전통시장의 레트로한 분위기를 살리면서 혁신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이제까지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 하나로 늘 해 왔던 시장 상부에 아케이드를 씌우는 기존방식을 탈피하고자 했다. 좀 더 뭔가 창의적인 건축으로 신흥시장을 부흥하는 새로운 충격이 필요했다.
쇠락한 지역사회를 살리고, 젊은이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도시혁신 성공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공모사업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던 차에 한 건축가가 독특한 안을 제안했다. 비닐 두 겹을 써서 그사이에 공기를 채운 투명한 튜브 링을 아케이드로 만들어 구름처럼 건물 위로 높게 띄우는 건축안이었다. 설계자 위진복 건축가는 "투명한 ‘튜브 링’으로 신흥시장의 열린 상공을 돌려 덮는다면, 비와 눈보라는 피할 수 있고 대신 햇빛과 바람은 얻을 수가 있다. 시장의 우중충한 분위기는 밝아지고, 냄새는 자연 통풍으로 사라진다."라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서울시는 전문가 심사를 통해 이 제안을 채택하고 설계에 착수했다. ‘튜브 링’이라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전통시장 재생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건축인허가 과정에서 생소한 튜브 링 구조물에 건축법규를 적용하는 그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지역은 남산고도 지구로 묶여 건축물의 높이가 12미터로 제한되는 곳이었다.
서울시와 용산구 직원들은 건축인허가 처리에 좀 더 치밀한 법적 검토가 필요했다. 튜브 링을 떠받치는 기둥을 설치해야 하는데, 상인들은 자기 상점 앞에 설치하는 것에 반대하여, 합의를 끌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기둥을 가늘게 나누어 여러 곳에 설치함으로써 동선과 시야 차단을 분산하고 최소화하도록 구조를 재설계하여 동의를 얻어냈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하려니 땅을 파보니 하수도 토관이 묻혀 있어 위치를 다시 선정해야 했다. 이렇게 재설계하고 다시 주민들과 협의를 반복하고, 설계에만 4년이 소요되었다. 더구나 좁은 골목에 구조체를 세우고 상부에 튜브를 설치하는 데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계비 8천만원에 공사비 40억원 짜리 사업을 완성하는 데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신흥시장 도시재생사업으로 채택한 ‘서울챙 클라우드’ 아케이드 안은 기획, 설계, 지역 상인 동의, 시공 등 단계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해방촌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며, 신흥시장은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고, 상인들은 매출이 2배 이상 오르니 만족했다.
기존에 해 왔던 시장 아케이드 구조의 틀을 깨는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으며 2023년 국토교통부에서 주최하는 건축문화상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고, 2024년 서울시 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적은 설계비에 건축공학적 디자인으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한 성공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좋은 건축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상권을 되살려, 지역을 활성화하는 모범 사례였다.
창의적인 건축 하나가 지역을 살리고 도시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협조와 동의, 지지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새롭고 창의적인 건축을 낯설어하고 거부하기보다는 좀 더 많은 포용력으로 지지하고 수용하는 분위기로 전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건축이 지역을 바꾸고, 명소가 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례는 많다. 스페인 빌바오시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서울시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대표적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은 민간 기업 건물이면서도 시민들에게 외부와 저층 내부공간을 내어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건축의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하는 증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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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seon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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