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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송평인 칼럼]한강, 문학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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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피해자에 대한 위로는 문학의 임무

그러나 역사 자체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

문학은 질문을 던지면 그만이지만

역사는 현실에 입각한 답을 해야 하기 때문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 작품은 논란에 휩싸이기 쉽다. 그것은 대체로 역사와 문학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구별을 늘 유지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도 4·3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역사라면 제주 4·3이 공산주의자들의 경찰서 공격에 의해 촉발됐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거두(去頭)하고 군경(軍警)에 의한 학살로 단도직입한다. 군경은 셰익스피어 비극 속의 맥베스 부인처럼 밑도 끝도 없이 처음부터 사악한 존재로 제시된다. 군경이 제주에서 특히 사악해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묻지 않는다.

물론 집단 학살이라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사실이 존재한다. 학살이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는지 따지게 되면 역사가 될 뿐 문학이 되지 못한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주는 감동은 같은 시대를 다룬 선배 작가들과는 달리 이념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면서 학살의 고통으로 응어리진 한 가족의 상처를 가슴 아프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문학의 기능 중 하나는 역사의 거대한 힘에 짓밟힌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다. 그래서 문학은 역사의 기준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 다만 거꾸로 역사 역시 문학의 기준으로 재단해서도 안 된다. 한강은 자신이 쓴 작품들로 인해 외국인들에게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가 됐기 때문에 그 답은 더욱 높은 권위를 갖게 될 것이다.

한강은 2017년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한국전쟁이 미소(美蘇)의 대리전’이라고 했다. 한국전쟁에는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반도가 미소 대립의 최전선에 있고 남북한이 각각 미국과 소련을 대리한다고 해서 반드시 전쟁을 하는 건 아니다. 대립 상태를 넘어 전쟁으로 나가게 한 것은 북한이다. 대리전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은 역사가들이 오랜 기간 실증적으로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공산주의자들의 전쟁 도발 책임을 도외시하는 무책임한 발언이 된다.

문학은 심정윤리의 영역이다. 착한 심정을 가진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잘못된 일에 엮일 때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문학이다. 반면 역사는 책임윤리의 영역이다. 의도만이 아니라 결과까지 따져 냉정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 인식에서 빚어지는 오류는 문학의 관용과 역사의 평가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게 적지 않다. 문학은 평가로만 가득 차서는 안 되고, 역사는 관용에 쉽게 자리를 내줘서는 안 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작품 속에서 주인공 ‘나’가 밝히고 있듯이 광주 5·18민주화운동 배경의 ‘소년이 온다’에서 시작된 국가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그러나 4·3과 5·18의 국가 폭력은 큰 차이가 있다. 5·18은 그 저항이 궁극적으로 전두환 군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의 원동력이 됨으로써 승리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다. 반면 4·3은 그 저항이 패배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다. 4·3은 여수·순천 사건과 북한의 6·25 도발로 이어지면서 역사를 퇴행시키는 방향에 서 있었다.

한강은 개인적 트라우마를 다룬 ‘채식주의자’에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룬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로 나아갔다. 우리나라에 한강 못지 않은 여성 작가들이 여럿 있지만 그가 한발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여성 작가들과 달리 역사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개인을 본격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극단적 채식주의로는 살아갈 수 없듯이 국가는 극단적 평화주의로는 존속하기 어렵다. 문학은 질문을 던지면 그만이지만 역사는 답을 해야 한다.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관점이 명확하면 된다. 극단적일수록 관점은 명확해진다. 그러나 답은 관점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관점이 현실적인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나는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는 부커상을 수상할 무렵 그 파격적 소재와 형식, 그리고 번역의 훌륭함을 다룬 글을 쓴 바 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소재에 전개도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마지막에 지루함이 쌓아올린 압력이 빅뱅처럼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는 받을 만한 상을 받았다. 다만 문학과 역사의 구분을 유지하는 것은 독자에게만큼이나 작가에게도 중요한 것이다. 특히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에게는….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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