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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소설가 한강이 “영혼의 피 냄새” 느낀 그림···서울에서 만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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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에

마크 로스코 관련 시 2편 수록

서울 페이스갤러리 ‘조응’ 전시

평일·주말 관람객으로 북적

경향신문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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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 한강 ‘마크 로스코와 나 2’ 가운데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마크 로스코(1903~1970)의 그림에서 ‘영혼의 안쪽’을 보았다. 한강이 2013년 펴낸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에 관한 시 두 편이 나란히 수록돼 있다.

“미리 밝혀둘 것도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마크 로스코와 나-2월의 죽음’에서 한강은 자신이 태어나기 9개월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크 로스코에 대해서 연결성을 느낀다.

마크 로스코가 숨질 때 한강은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는 작은 존재였다. 그것은 “신기한 일이 아니라/ 쓸쓸한 일”이며 9개월의 시간은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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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했을 당시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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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자신의 탄생과 로스코의 죽음 사이의 시차에 대해 골몰하게 된 이유는 로스코의 그림에 매료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이어 수록된 시 ‘마크 로스코와 나 2’에서 한강은 로스코와 자신의 연결성을 좀 더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중략) 스며오르는 것/ 번져오르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방금/ 벼락 치는 구름을/ 통과한 새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한강이 ‘영혼의 피 냄새’를 맡았던 로스코의 그림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조응(Correspondence):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 전시에서다.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이우환이 선정한 로스코의 그림 6점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달 4일 개막한 전시엔 현재까지 1만7000여명의 관객이 찾았다. 주말엔 1000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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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마크 로스코 전시 전경. 페이스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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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는 그림을 통해 영혼의 깊은 곳을 표현하고자 했다. 구체적인 형상 없는 그저 커다란 직사각형을 쌓아놓은 모양일 뿐이지만, 경계가 부드럽게 흐려진 윤곽과 겹겹이 쌓아 올린 색채의 레이어들 앞에서 내면에 눌려있던 감정과 상처가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관객들이 많은 이유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작품을 통해 국가 폭력과 전쟁의 잔학성, 인간 삶의 연약성 등에 대해 써왔다. 로스코의 삶 또한 학살과 폭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학살의 한가운데서 태어났다. 로스코가 태어난 제정 러시아의 드빈스크는 유대인 한정 거주지역이었던 ‘페일 거주 지역’이었다. 당시 유대인은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만 거주하도록 허용돼 강제이주했고, 재산권을 박탈당하는 일이 많았다. 로스코가 태어나기 5개월 전 키시뇨프에서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고, 1905년 10월 오데사에서는 6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살해됐다. 로스코의 가족은 생존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다. 로스코가 열 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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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No. 16 ’(1951), oil on canvas, 171.8cm × 113.3 cm 페이스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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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무제’, 1970, 캔버스에 아크릴, 152.4 x 145.1 cm, (C)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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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영혼의 피 냄새’를 맡은 작품은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작 ‘무제’는 선홍색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통해 내면 깊은 곳과 만나길 바랐던 로스코의 모든 작품들이 ‘영혼의 단면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강의 시는 로스코의 그림을 통해 마주한 한강의 내면 풍경인 것이다. 전시는 26일까지.


☞ 마크 로스코가 내게 거는 말···‘훅’ 들어와 내면 깊이 다가오네
https://www.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2409091459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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