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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공감]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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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칼 세이건을 비롯한 몇몇 천문학자들은 성간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의 발사를 앞두고 두고두고 회자될 사랑스러운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린다. 그것은 외계인에게 지구를 소개하는 금속 레코드판을 별과 별 사이를 항해할 보이저호에 싣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레코드판에는 지구 사진과 인사말, 지구의 소리, 그리고 지구상 가장 아름답다고 선별된 일련의 음악이 실려 있다. 책 <지구의 속삭임>은 그 과정을 기록했는데 읽다보면 이 엉뚱하고도 순진한 프로젝트가 사람들을 얼마나 몰두하게 만들었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콧대 높은 유엔의 관료들도 한마디씩 덧붙이고 그들의 인사 뒤에는 지구의 또 다른 지적 생명체인 혹등고래의 노래소리가 흐른다.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 대통령의 인사말이 실린 파트를 지나면 55개의 언어로 사람들이 인사한다.

지구의 소리는 지구의 진화 과정을 담는다. 화산과 지진과 천둥소리, 끓어오르는 진흙탕 소리, 바람과 비와 파도 소리, 귀뚜라미와 개구리와 하이에나와 들개 소리, 발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 그리고 웃음소리가 들린다. 또 인류 진화 이후 지구에 등장한 소리들, 이를테면 양치기, 대장간, 모스 부호, 로켓 이륙 소리 따위가 뒤를 잇는다. 듣다보면 황량한 원시 지구의 검고 뜨거운 땅 위에 서 있다가 한바탕 생명의 진화를 되돌아 겪은 뒤 다시 이곳으로 도착하는 듯하다.

골든레코드는 외계인에게 ‘안녕’하고 인사하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소개하고,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한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중요한 문제. 우리가 가진 최악의 면 역시 레코드판에 담아야 할까?

지구의 사진을 담당한 존 롬버그는 비교적 쉽게 이 문제를 정리한다. “우리는 전쟁, 질병, 범죄, 가난을 전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지구의 소리를 담당한 앤 드류안은 망설인다. “우리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면, 달리 말해 서로 싸우는 종으로 보여준다면, 이 레코드판이 최소한 정확한 문서로서의 가치는 가진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칼 세이건은 밀고 나간다. “우리가 자신의 최선의 측면만을 우주에 보여주려는 게 잘못인가? 우리는 최고의 음악들을 고르려고 애썼다. 인류와 인류가 앞으로 누릴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도 절망적인 시각이 아니라 희망적인 시각을 전달하면 왜 안 되는가?”

지구의 사진과 소리 부분에서는 결국 인류의 비극이 의도적으로 누락됐다. 그러자 나는 이 프로젝트와 약간 멀어지고 말았다. 나는 전쟁, 질병, 범죄, 가난을 겪는 사람들, 부러진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의도적으로 누락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소식을 전할 때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던 순간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에 어째서 내가 무언가 보상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그것은 한강이 아시아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극을 누락시키기보다는 비극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류의 최악의 측면에서 최선의 측면을 발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보를 담은 파트에서는 어두운 소식을 모두 잠재우지만 아름다움을 담은 파트에서는 보이저 레코드판도 이를 빼놓지 못한다. 수록된 마지막 음악은 환희와 고통, 평화와 괴로움이 공존하는 베토벤의 카바티나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응시해온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 기쁘다. 이런 날들을 지날 때면 예술의 힘을 좀 더 믿게 된다. 어둡고 차가운 곳에 머무느라 어둡고 차가워진 날들을 좀 더 긍정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아는 것에 대해 말할 때보다 느끼는 것에 감탄할 때 진실에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경향신문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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