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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북 '경의선 폭파쇼' 준비…남 '선조치 후보고' 지시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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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정체불명의 무인기 침투를 “한국 군부세력이 가담한 중대 주권 침해 도발”로 규정하며 전방 전역에 실전 대비 태세를 갖추자 군 역시 예하부대에 화력대기 태세 강화 등을 지시하며 한반도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이번 사건을 남북 관계 단절을 위한 ‘적대적 두 국가론’ 정당화에 적극 활용하는 가운데 경의선과 동해선 일대의 남북 연결 도로를 폭파하기 위한 준비도 완료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사흘째 담화를 내고 이제는 한국을 '잡종개'에 비유하면서 미국에까지 화살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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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 폭파를 준비하는 정황이 우리 군 감시장비에 포착된 가운데 14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의 경의선 도로 위 구조물 인근에 흙더미(오른쪽 사진)가 쌓여 있다. 왼쪽 사진은 지난해 5월 파주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같은 지역 경의선 도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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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14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북한군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실제 도발 가능성에 대한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북한군 총참모부가 국경선 일대에 ‘완전사격 준비태세’를 갖추라는 작전 예비지시를 내렸다는 보도에 대한 입장이었다. 그는 “(지시가 하달된 건)전방지역 전체에 걸친 여단이라고 생각한다”고도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군 소식통은 “북한의 위협 고조에 따라 예하부대에 대북 감시경계 및 화력대기 태세 강화 지침을 하달하는 등 필요한 대비 태세를 강화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전했다. 총참모부가 “재도발 확인시 즉시적으로 적의 특정대상물들을 타격해야 하는 상황”을 상정해 “전시 정원 편제대로 완전무장한 국경선 부근 8개 포병여단을 사격 대기 태세로 전환”한 데 따라 군도 만일의 경우 맞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경의선 및 동해선 일대에서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할 준비도 끝마쳤다고 군은 밝혔다. 지난 9일 북한군 총참모부가 남북 연결 도로와 철길을 단절하고 요새화 공사에 착수한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다. 구체적으로 북한군이 도로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그 뒤에서 준비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이 군 탐지자산에 포착됐다. 김여정은 이날 오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우리는 평양무인기사건의 주범이 대한민국 군부쓰레기들이라는것을 명백히 알고있다”며 “핵보유국의 주권이 미국놈들이 길들인 잡종개들에 의하여 침해당하였다면 똥개들을 길러낸 주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한국군과 함께 미국까지 겨냥했다.

이처럼 북한이 한반도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는 것과 관련, 이성준 실장은 “북한이 도발하게 되면 우리는 자위권 차원에서 강력히 응징할 것”이라며 “군이 선(先)조치 후(後)보고하고 강력히 대응하도록 하는 훈련과 지침들이 하달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김명수 합참의장은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와 서해 해상경비 임무를 수행 중인 천안함을 방문해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하기도 했다. 김 의장은 “적 도발에 철저히 대비하되 적 도발시에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즉각·강력히·끝까지 응징할 것”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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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합동참모의장이 14일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서해 해상경비 임무를 수행 중인 천안함을 방문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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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제력을 기반에 둔 대비 태세 강화는 필수지만, 이와 별개로 남북이 치고받기식(tit-for-tat)으로 서로 강경한 대응을 주고받으며 정세가 악화하는 양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여정은 지난 12일 담화에서 “(무인기 반복 침투가)전쟁 발발로 이어져도 아무러한 책임도 없다는 것”이냐며 “(우리)안전에 위해를 끼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반박이라도 하듯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13일 오전 방송에 출연해 “북한이 자살을 결심하지 않을 것 같으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오후에는 국방부가 “북한이 우리 국민 안전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 날이 바로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13일 밤 북한은 총참모부의 국경선 부근 부대 전투 태세 완비 사실을 공개했고, 곧이어 김여정이 또 담화를 내 “또다시 정권종말을 운운하며 무엄하고도 자멸적인 선택을 정식 공표했다”고 국방부 입장을 직격했다.

북한은 무인기 사태와 남북 도로 폭파 준비 등을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분위기다. “남북을 완전히 갈라놓기 위한 국면전환을 실시하면서 일련의 조치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노동신문은 14일 남측을 향해 위협을 쏟아낸 전날 김여정 명의 담화와 국방성 대변인 담화, 북한군 총참모부의 사격준비태세 지시 하달 발표 등을 1면에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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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이른바 '무인기 침범' 사건과 관련해서 전날 발표한 김여정 당 부부장과 국방성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를 게재했다. 아울러 인민군 총참모부가 국경선 부근의 포병연합부대들과 중요 임무수행 부대들에 사격준비태세를 지시한 것을 주민들에 알리며 대남 적개심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노동신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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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성 대변인은 해당 담화에서 “지금 조선반도에는 한국군부패당의 무모한 용맹으로 말미암아 당장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정세가 조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리적으로 교전상태에 있는 조선반도에서는 자그마한 불씨도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남북이 김정은이 주장한 ‘교전 중’을 재차 강조했다. “한국이 군사공격에 쓸 수 있는 무인기를 평양에 보냈다”고 주장하며 적대적 두 국가론의 근거로 삼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고착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이런 기류에 거부감이나 반발감을 가진 엘리트와 주민을 설득하기 위한 근거로 이번 무인기 사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 폭파 준비 역시 같은 맥락의 조치로 읽힌다. 군 관계자는 “경의선·동해선은 남북을 잇는 대표적 통로로 기능해왔다”며 “이들 도로를 단순 무력화하는 걸 넘어서 폭파까지 한다는 건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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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2024년 6월 동해선 가로등 철거 작업 모습. 합동참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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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군 당국은 북한이 경의선·동해선을 폭파하려는 정황을 지난 9일과 11일 사이 본격적으로 포착했다고 한다. 9일은 총참모부가 접경지역 요새화를 공식 발표한 날, 11일은 외무성이 무인기 평양 침투를 공개한 날이다. 남북 단절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인기 사태와 함께 일종의 ‘폭파쇼’를 꾸미는 것 아니냐는 의미다.

군 안팎에선 북한이 대대적인 폭파를 진행하고 관련 영상과 사진을 통해 선전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때처럼 이목을 끌면서 주민 각성을 유도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이날 ‘조선인민이 격노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2면에 게재하는 등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한 선전선동도 이어가고 있다. “민심이 증오와 복수의 용암으로 끓을 때 그 세찬 분출을 당할 힘은 없다” “원수들에게 상상도 못 할 무서운 고통과 파멸을 주라” 등의 내용이다.

여기엔 정보 유입 및 내부 유통이 이전보다 활발해진 상황에서 어차피 무인기에 평양 상공이 뚫린 사실을 숨길 수 없을 바에는 유리하게 이용하자는 속내가 깔린 것일 수 있다. 영공 방어 실패는 물론 최고존엄 모독 논란에 해당할 수 있는 전단 내용까지 공개한 게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유일지배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선 최고존엄(김정은)의 권위와 안전은 체제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라며 "남측 무인기 침범이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알려질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유엔군사령부(유엔사)는 이날 "언론 보도를 통해 북한 상공의 무인기 출현에 대한 북한의 주장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유엔사는 현재 정전협정에 따라 이 문제를 엄정히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영교·이근평·이유정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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