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이스라엘군이 최근 가자지구 북부에 대한 공세를 재개한 가운데 이 지역을 완전 봉쇄해 무장 세력을 굶겨 항복을 받아 내려는 이른바 "장군 계획(Generals’ Plan)"이 시작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1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가자지구 언론국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북부에서 대규모 작전을 재개한 뒤 9일 만에 이곳에서 300명 가량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주민들을 인용해 이스라엘군 전차(탱크)가 가자시티 북부 경계까지 도달해 가자시티 셰이크라드완 지역 일부 구역을 포격해 많은 가족들이 달아나야 했다고 전했다.
이번 작전이 가자지구 북부에서 민간인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전투원들만 남긴 채 식량·물 지원을 끊어 항복을 받아내려는 극단적인 계획의 시작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 계획은 2004~2006 이스라엘 국가안보위원회(NSC) 위원장을 지낸 장군 출신 지오라 에일란드 주도로 지난달 이스라엘 의회(크네시트) 외교국방위원회에 제시됐고 이후 이스라엘 언론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의회 외교국방위원회와의 비공개 회의에서 이 계획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 방송은 "장군 계획"으로 불리는 이 계획을 주도한 에일란드 전 위원장이 관련해 "우리는 지난 9~10달간 이미 가자지구 북부를 포위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가자지구 북부에 여전히 살고 있는 30만 명의 주민들에게 그들이 이스라엘이 제공할 안전 통로를 따라 10일 안에 이 지역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그 시간이 지나면 이 지역 전체가 군사 지역이 된다. 그리고 (가자지구 북부에 남은) 모든 하마스 사람들은, 그들이 민간인이든 전투원이든, 항복하거나 굶어 죽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일단 대피령을 내린 뒤 남은 사람 전부를 적 전투원으로 간주하고 이 지역을 포위해 식량과 물을 포함한 모든 생필품 반입을 차단해 인위적인 기아 상황을 창출해 항복을 받아 내겠다는 것이다.
<AP> 통신이 입수한 이 계획 사본에 따르면 계획엔 가자지구를 둘로 분할해 하마스 없이 새 행정부를 꾸리기 위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북부에 대한 무기한 통치가 포함돼 있다. 이는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을 12달 안에 끝낼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관련해 일단 부인했다. 14일 <AP>는 현재 가자지구 북부에서 발령되고 있는 대피령이 "장군 계획"의 첫 단계냐는 질문에 나다브 쇼샤니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우리는 그런 계획을 받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고 전했다.
<AP>는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해 잘 아는 한 당국자가 이 계획의 일부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계획의 어느 부분이 시행 중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가자지구 북부엔 이미 10월 들어 식량이 거의 들어가지 않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12일 성명을 내 가자지구 북부 폭력 확대가 팔레스타인 가족의 식량 안보에 재앙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지난 1일 이후 북부로 향하는 주요 통로가 끊겼고 식량 지원이 전혀 들어오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세계식량계획은 이달 가자지구에 필요한 식량의 4%만 반입됐다고 덧붙였다.
14일 <AP>도 유엔 고위 당국자가 이스라엘이나 가자지구 남부를 거쳐 가자지구 북부로 온 지원품은 지난달 30일 이후 소규모 병원용 연료 지원 한 번 뿐이었고 다른 모든 지원이 끊겼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북부 일부 지역이 이미 고립 상태라고 증언했다. 14일 <로이터>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단 베이트 하눈, 자발리야, 베이트 라히야를 가자시티로부터 고립시켜 이 세 지역에서 대피하려는 것 외엔 두 지역 간 접근을 차단 중이라고 주민들이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장군 계획"이 실현될 경우 민간인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군은 전쟁 뒤 1년간 가자지구 대부분 지역에 대피령을 내렸고 전역에 공습을 계속해 왔다. 특히 북부는 이스라엘군이 지상 작전을 처음으로 시작한 지역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남쪽으로 여러 차례 대피 끝에 다시 귀환한 이들로 가자지구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이번 대피령에 빠르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유엔은 현재 가자지구 북부에 40만 명이 거주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자시티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의 팔레스타인 구호 활동가 조마나 엘칼리리(26)는 <AP>에 가자지구 남부 대부분 주민들이 천막촌에서 잦은 공습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우린 그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안다"며 북부 주민들은 "떠나지 않을 것이고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조차 이 계획을 비난했다. <AP>는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의 자유를 보호하고자 하는 이스라엘 비영리 단체 기샤(Gisha)의 타니아 하리 국장이 "계획에서 대피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대피하지 않으면 주민 모두를 합법적 군사 목표물로 전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 기지 강제 진입…유엔 사무총장 "전쟁 범죄 구성 가능" 경고
가자지구와 함께 레바논에서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군은 13일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UNIFIL) 기지에 강제 진입해 비판을 받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유엔 기지 출입문이 이스라엘군의 장갑차에 의해 고의적으로 파손됐다"며 "평화유지군에 대한 공격은 국제인도법을 포함한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며 전쟁 범죄를 구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이터>는 쇼샤니 대변인이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의 전투 중 "위험에서 벗어나려 후진"했을 뿐 "기지 습격이나 진입 시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네타냐후 총리는 13일 구테흐스 사무총장을 향해 "헤즈볼라 거점과 전투 지역에서 평화유지군을 철수할 때"라고 거듭 촉구했다. 그는 "평화유지군이 입은 피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유엔의 "레바논에서의 평화유지군 철수 거부가 이들을 헤즈볼라의 인질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10일과 11일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평화유지군 4명이 다치며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정상이 이스라엘군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는 등 국제사회의 비판이 빗발치는 상황이다. 12일에도 평화유지군 1명이 레바논 남부 나쿠라에서 인근에서 벌어진 군사 활동으로 인한 총격으로 부상을 입었다.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 수장 살해 등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지난 1일 이스라엘에 탄도미사일 180발을 쏜 것에 대해 이스라엘의 재보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미 국방부는 13일 이스라엘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포대 및 관련 미군 병력을 추가로 배치한다고 밝혔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 조치는 이스라엘 방어에 대한 미국의 철통 같은 헌신을 강조하고 이란의 추가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 내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라이더 대변인은 이미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 이후 중동 지역에 사드 포대 하나를 배치했고 2019년에도 훈련을 위해 이스라엘에 사드 포대를 보낸 바 있다고 덧붙였다. 사드는 150~200km에 이르는 지역에서 중거리·단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에 특화돼 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미국의 사드 추가 배치에 대해 중동 전문가 아론 데이비드 밀러의 분석을 전했는데, 그는 사드 배치가 미국이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에 대해 "이란이 대응해야 할 만큼 포괄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징후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내부에선 이란 핵 시설 및 석유 관련 시설 타격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드 배치가 이 지역 분쟁이 고조될 가능성을 더욱 키운다는 우려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국방정보국(DIA) 분석가 출신 해리슨 만이 사드 배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덜 호전적으로 행동하도록 채찍보다 "당근"을 안겨준 것으로 보이지만 "이 (사드) 포대가 배치되고 이스라엘이 미국의 방공 보호를 받으면 네타냐후 총리가 피하겠다고 약속한 민감한 목표물을 타격하지 않고 약속을 지킬 유인이 있겠는가?"라며 반문했다고 전했다.
더 많은 미군이 배치되면 미군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밀러는 "이란 미사일이 미군을 타격하거나 이라크나 시리아 친이란 민병대에 의해 미국 인력이 다치거나 사망하면 미국이 이란에 대한 물리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14일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에서 현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습 피해를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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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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