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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남북, ‘무인기 침투’ 긴장 격화 국내 정치에 이용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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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적개심 고취 체제 결속 도모 목적

남, 북한 이슈로 각종 정치적 논란 희석

“대통령 책무는 한반도 안정 관리” 비판

경향신문

북한이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 폭파를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진 14일 경기도 파주의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 선전마을이 적막한 모습이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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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평양 침투’ 논란으로 남북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남북 당국이 대화를 통한 상황관리 보다는 강경론을 고수하면서 이번 사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북한은 남한을 향한 주민들의 적개심을 높여 체제 결속의 기회로 삼고, 남한은 긴장 고조를 방치해 정부·여당에 불리한 각종 정치적 논란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14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전날 밤 발표한 ‘무모한 도전객기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는 제목의 담화를 1면에 보도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괴뢰국방부가 드디어 도발자, 주범자로서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라며 “한국군부 깡패들은 경거망동을 삼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한국 군당국을 향해 “나라와 국민을 온갖 객기와 나불거리는 혓바닥으로 지키는 무리”, “뒈지는 순간까지 객기를 부리다 사라질 것들” 등 거친 표현을 쏟아냈다.

김 부부장은 이날 저녁 발표한 담화에서도 “핵보유국의 주권이 미국놈들이 길들인 잡종개들에 의해 침해 당했다면, 똥개들을 길러낸 주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북한이 이번 무인기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내면서 ‘핵’을 언급한 건 처음이다.

국방부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북한을 향해 “적반하장”이라며 “우리 국민 안전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이에 북한이 더 강한 어조로 되받은 것이다.

노동신문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한국의 무인기가 평양 상공을 침범했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천백배 보복 열기로 끓는다”라며 주민들이 ‘격노’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북한은 그간 남측의 대북전단 살포와 이에 대응하는 북한 당국의 담화 등을 일절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변화다.

북한이 위기 상황을 부각해 지난 7월 대규모 수해와 만성적인 경제난 등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차단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론’에 따른 남북 간 물리적 단절 조치와 향후 군사행동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치로도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관리하기는 커녕 모호한 태도로 오히려 불안과 긴장을 키우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이 지난 11일 무인기 침투를 주장한 뒤부터 줄곧 “사실관계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평양에 상공에 남측 무인기가 출연해 전단을 살포한 게 맞는지, 맞다면 누가 보낸 것이고,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적들의 의도에 우리가 휩쓸리지 않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한국군이 무인기 침투에 가담했다는 근거로 들며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전날 담화에서 다시 한번 무인기가 북한 상공에 나타나면 “공화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여기고 우리의 판단대로 행동할 것임을 재삼 경고한다”라고 밝혔다.

정부의 메시지가 과도하게 북한을 자극한다는 평가도 있다.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방송에 출연해 “북한이 자살을 결심하지 않으면 (전쟁을) 못할 것”이라며 “경험에 의하면 (북한 주장을) 무시하는 것이 최고의 정답”이라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그동안 보여준 김정은의 무모하면서도 공격적인 리더십을 고려하면 최악의 선택, 즉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열어 놓고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라며 “대북, 대국민 메시지에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북한 외무성은 지난 11일 저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중대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은 지난 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 삐라(대북전단)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고 주장하며 대북전단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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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북한에 접촉 등을 먼저 제안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김여정 부부장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북한 당국과 접촉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자 “현 단계에서 확인해 드릴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민단단체에 대북전단 살포의 자제를 요청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도 재차 확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전문가는 “정부는 현재 충돌을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하는 것 같다”라며 “북한과 대화를 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 모두 이런 긴장 조성이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깔린 듯하다”라며 “대통령의 책무는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고 안정적 관리의 핵심은 결국은 대화”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중재하는 방안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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