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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음주단속 교란하는 ‘술타기’ 직접 해봤습니다… "악용 막으려면 처벌규정 신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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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타기 후 '실제수치 vs 위드마크' 비교]
음주→사고→도망→술타기 했다고 가정
실제 측정치는 0.08%, 위드마크는 0.06%
처벌이 면허 취소→정지로 낮아지는 효과
한국일보

6월 27일 전북 전주 덕진구 여의동 호남제일문 사거리에서 발생한 음주 운전 포르쉐 차량과 스파크 차량의 사고 현장. 전북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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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운전자인 50대 A씨는 올해 6월 술을 마신 뒤 최고 시속 159㎞로 차를 몰다가 사고를 냈다. 한 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이 중태에 빠진 큰 사고였으나, A씨는 사고 직후 빠져나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그다음 편의점으로 가서 맥주까지 사 마셨다. 사고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교란해 음주운전 증거를 없애기 위한 일명 술타기(사후 음주) 수법이다. 사고 발생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경찰이 그를 찾아가 측정한 혈중알코올농도(원래 음주+술타기)는 0.084%.

수치로만 보면 면허취소가 마땅하나, 고의적으로 보이는 술타기 때문에 계산이 복잡해졌다. A씨가 "(사고 후) 맥주 두 캔을 마셨다"고 진술한 점을 미뤄 수사기관은 사고 당시 이미 만취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위드마크 공식(혈중알코올농도 추정식)을 적용해도 면허 정지 수준인 0.051%가 나왔지만, 최종 결론은 달랐다. 검찰이 A씨를 기소하며 적용한 위드마크 추산 농도는 0.036%. 도로교통법이 인정하는 음주운전의 기준(0.03%)에 가까운 수치였다. 위드마크 공식을 운전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법원의 원칙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피의자에게 유리한 알코올농도 추정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달아난 뒤, 술을 더 마셔 실제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를 덮어버리는 술타기가 빈발하면서, 음주단속 현장에선 도주 운전자가 되레 더 낮은 처벌을 받는 '정의의 왜곡'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최초 음주 시기, 음주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위드마크 공식이 법원에서 운전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위드마크를 보수적으로 판단하는데, 올해 5월 발생한 가수 김호중 사건에서도 검찰은 그에게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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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음주를 하고 음주측정을 한 결과 0.1% 혈중알코올농도가 나왔다. 수사기관이 1차 술자리에서의 음주량, 음주 시간 등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가정하면, 해당 수치에서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운전 당시 수치를 추산해야 한다.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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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술을 먹고 도망간 뒤 '실제 수치'가 아닌 '추정치'를 적용받으면 얼마나 음주단속을 교란·왜곡할 수 있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 12일 본보 기자가 ①실제 음주 후 측정한 혈중알코올농도 수치와 ②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서 계산된 수치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직접 비교해봤다. 음주측정기는 경찰청 공식 납품사 제품 중 가장 정밀도가 높은 제품을 이용했으며, 오차범위는 ±10% 내외다.

이날 오후 9시 30분쯤, 식당에서 지인 한 명과 함께 소주 세 병을 나눠 마시고 측정한 결과 수치는 면허 취소(0.08% 이상) 수치인 0.082%였다. 해당 수치로 음주운전 중 사고를 내고 도망갔다고 가정한 후, 술타기를 위해 2차로 맥주를 마셨다. 오후 10시 37분쯤 맥주 500㎖를 다 들이켜고 1시간 정도 흐른 오후 11시 38분, 실제 경찰에 단속됐다는 상황을 가정해 수치를 재보니 0.1%가 나왔다.

법원은 운전 당시 농도를 위드마크 공식을 통해 확인하면서도, 피고인에게 최대한 유리한 계산 방식을 인정한다. 위드마크 공식에 활용되는 △체내흡수율 △성별에 따른 계수 등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기자의 경우에도 관련 항목을 가장 유리하게 적용한 결과, '2차 음주로 인한 위드마크 농도'는 0.0392%가 나왔다. 결국 단속 수치인 0.1%에서 이 수치인 0.0392%를 뺀 것이 운전 당시 추정 농도다. 0.0608%다. 결국 도주와 술타기를 통해 단속 당시 음주 수치를 0.082%에서 0.061%로 낮췄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기자가 받게 되는 처분은 면허 취소(0.08% 이상)에서 면허 정지로 낮아지는 셈이다. 도망친 효과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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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마크 공식을 이용해 계산한 맥주 500ml 섭취 시 혈중알코올농도 최대 수치. 운전자에게 가장 유리하도록 체내 흡수율은 가장 크게, 성인 남성의 위드마크 상수는 가장 적게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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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걸려 있는 술타기 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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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혈중알코올농도 수치와 위드마크 추산 결과. 그래픽=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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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타기 수법이 이처럼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자, 이를 악용하는 행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60대 B씨는 지난해 9월 운전면허 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28% 상태로 약 2.4㎞를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B씨는 주차 후 약 39초 동안 차에 머물렀는데, 이 시간 동안 "알코올 도수가 25도인 소주(375㎖) 한 병을 마셔서 수치가 그렇게 나온 것일 뿐 음주 상태로 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B씨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한 결과, 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 수치는 단속 수치 이상으로 나왔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정치권은 최근 술타기를 통한 음주측정 방해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의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해당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지난달 25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아직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국회 본회의 상정 및 시행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전망이다.

결국 법 시행 전까지는 경찰의 신속한 초동대처와 다양한 증거수집이 유일한 방지 장치다. B씨 사건을 판결한 재판부는 "혈중알코올농도 계산의 기본적 사실인 음주장소, 술의 종류, 섭취량, 후행음주 여부 등에 대한 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러한 객관적 증거들 없이 정황증거 내지 추측만으로는 음주운전을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정경일 교통전문 변호사는 "음주운전 이전에 어디에서 얼마나 마셨는지 등을 수사기관이 폐쇄회로(CC)TV로 확보한다면, 위드마크 공식이 항상 피고인에게 유리한 건 아니다"라며 "김호중 사례처럼 '음주 뺑소니 후 술타기'의 경우 경찰이 압수수색 등 적극적인 증거 수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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