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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미이행시 3천유로”…베를린 소녀상 결국 철거 명령, 쟁점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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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지난 8월1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소녀상 앞에 꽃을 놓아두고 있다. 사진 장예지 베를린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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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에 결국 철거명령이 내려졌다.



11일 소녀상을 설치한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공개한 미테구청의 철거명령 통지문을 보면 소녀상을 오는 31일까지 철거하지 않을 시 3000유로(약 44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통고했다. 코리아협의회는 법원에 철거명령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해 사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계획이다. 2020년 9월 처음 설치된 이후 일본 정부의 압박을 받으며 4년째 자리를 지켜 온 소녀상의 자리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미테구청은 지난달 30일 코리아협의회에 보낸 철거명령 통지문을 통해, 소녀상의 설치 기한 연장 및 영구 존치가 불가능한 이유로 그동안의 ‘관행’을 꼽았다. 미테구청은 “(구청) 관행상 도시 내에 일시적으로 설치된 예술 작품의 전시 기간은 최대 2년”이라며, 기념비 등을 영구 설치하려면 필수적인 공모 절차를 통해야 특별 사용이 허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녀상을)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건 부당한 특혜”가 된다는 주장이다.



미테구는 앞서 소녀상 설치 기한을 2021년 9월까지 1년 연장한 뒤, 다음해인 2022년 9월까지 추가 연장을 결정했다. 이후 미테구는 최종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소녀상 존치를 임시로 ‘용인(Duldung)’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미테구가 “관행상 2년 설치”를 주장했으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다. 독일 공영방송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RBB)이 지난달 19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전쟁으로 파괴됐던 베들레헴 교회를 기념하는 예술 작품은 미테구가 10년간 설치 허가를 해 자리를 지켰고, 이 작품은 공공 기금의 지원까지 받았다.



슈테파니 램링거 구청장과 같은 녹색당 소속 구청장이 선출된 인근 프리드리히샤인-크로이츠베르그 지역에선 “미테구와 대조적으로 임시 예술품을 영구화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정도 한 바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방송은 실제 임시 설치된 조형물이 영구 존치한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지역에 설치된 예술작품과 허가 기간의 목록을 요청했지만, 미테구는 이를 보관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베를린 주정부와 미테구는 일본과의 외교적 갈등 우려도 철거 명령의 배경으로 내세우며 일본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구청은 “2015년 일본과 한국 간의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보는 독일 연방정부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며 “이에 따라 독일과 일본의 추가적 외교 갈등과 협력 악화의 위험을 피하려 한다”고 했다. 또 “한일 갈등을 주제로 하는 소녀상은 독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독일 수도의 기억과 추모 문화에 직접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2015년 합의는 박근혜 정부 당시 이뤄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이하 한일합의)를 일컫는다.



그러나, 베를린과 달리 이탈리아 스틴티노시는 일본 정부의 방해와 만류를 뿌리치고 지난 6월 소녀상을 건립했다. 당시에도 일본은 스틴티노시 쪽에 소녀상을 한일 간의 갈등 소재로 축소하며 ‘위안부’ 문제는 한일합의로 모두 해결됐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그러나 소녀상 건립에 참여한 시민들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리타 발레벨라 스틴티노 시장과 만나 유엔(UN) 등 국제기구가 한일합의의 문제점을 수차례 지적하며 개정을 요구해 온 사례를 제시하며 설득할 수 있었다.



2016년 3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에 피해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공식적 사과 등의 조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그 뒤에도 유엔인권이사회(2017)와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2018), 유엔특별보고관(2023) 등이 재차 합의 개정을 권고했고,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구체적 조처가 없었다며 피해자 구제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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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2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사르데냐셤 스틴티노시 해변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모습. 리타 발레벨라 스틴티노 시장이 소녀상을 쓰다듬고 있다. 사진 정의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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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12일(현지시각) 한겨레에 “2015년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고, 소녀상은 한일 관계의 문제라는 건 일본 정부가 취해 온 전형적인 입장”이라며 “소녀상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2015년 합의가) 소녀상 철거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과거 홀로코스트를 계속해서 사과하고, 지금도 재현물을 세우는 게 독일인데, 일본의 논리를 독일이 수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테구청과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의 사유지 이전을 두고도 이견을 빚었다. 구청은 소녀상 존치를 불허하는 대신 지난 9월 미테구 내 사유지 3곳을 대체 부지로 제시했지만, 코리아협의회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코리아협의회는 당시 논의에서 램링거 구청장은 “구체적인 후보지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유지 조건을 내걸어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후 코리아협의회는 관내 공공부지 중 대체 부지 5곳을 정해 이전 장소를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미테구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이번 철거명령에 대해 외교부는 12일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며, 사안을 면밀히 주시하며 관련 단체·기관 등과 지속 소통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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