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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정부·여당이 조세 저항을 선동하는 ‘막장 정치’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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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0월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주최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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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 선임기자



정치인에게 표는 중요하다. 선거에서 지고서는 추구하는 가치나 정책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익집단들은 이를 잘 활용한다. 몰표를 주겠다며, 새 이권을 요구하거나 특권을 지키려 한다. 주식 투자자 수가 크게 늘어난 오늘날, 이른바 ‘큰손’들은 자신들에게 해로운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주식을 파는 것만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가 하락’을 싫어하는 다른 투자자들의 동조를 얻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물러난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021년 9월29일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주식 양도차익이나 배당금에 20%를 매기는 금융소득과세(우리나라의 금융투자소득세)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1989년에 이를 도입했다. 세율이 20%로, 다른 소득에 높은 누진세율(33%, 40%)을 적용받는 고소득자들에겐 상대적으로 가볍다. 기시다는 형평에 맞게 고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에 불만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기시다 취임 전후 8일 연속 주가가 떨어졌다. 그는 결국 “당분간 생각하지 않겠다”고 물러났다. 나중에 주가는 폭등했지만 ‘당분간’은 ‘영원히’가 됐다.



기시다의 뒤를 이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금융소득과세 강화는 실행하고 싶다. (과세 강화로) 부자가 정말 해외로 나가버릴지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물가고 해결을 위한 금리 정상화’를 공약한 그가 당선하자 이번에도 주가가 폭락했다. 그는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를 만나 “지금은 금리를 올릴 환경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투자자들을 달랬다. 금융소득과세 강화 의지도 어찌 될지 모른다.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금을 늘리는 조세 개혁은 특히 어렵다. 표를 잃을 줄 알면서도 국가의 앞날을 더 생각해 개혁을 밀어붙이는 정치 지도자는 흔히 보기 어렵다. 많은 경우, 눈앞의 표계산만 하고 ‘비겁’을 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금투세를 도입했다. 주식 등의 투자 수익 5천만원 초과분에 2023년부터 과세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는 시행을 2년 미뤄두고는, 윤 대통령이 올해 1월2일 증시 개장식에 참가해 “과도한 부담의 과세가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시장을 왜곡”한다며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이미 증권거래세는 단계적 폐지를 해가는 중이었다.



금투세는 진보냐, 보수냐로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 아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적용하는 것으로 윤석열 정부의 경제 부총리 두 사람(추경호, 최상목)도 지난날 도입을 추진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세금을 내게 될 ‘큰손’들보다 더 앞장서 ‘폐지’를 외친다. 정부와 여당이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불안감을 부추기며 조세 저항을 선동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금투세 폐지가 곧 민생’이라고 주장한 한 대표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의 금투세 폐지 촉구 집회에도 참석했다. 야당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판단해선지, 아주 신이 나서 뛰고 있다. 국가와 공동체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표만 얻으면 된다는 행동은 ‘정치’가 아니다. 굳이 정치에 포함시키자면, ‘막장 정치’라 할 수밖에 없겠다.



‘금투세 폐지는 민생’이란 주장엔 ‘당신도 주식, 가상자산,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게 해주겠다’던 ‘대선 후보 윤석열’의 인식이 짙게 배어 있다. 그런 인식으론 경제 회복도, 민생 살리기도, 주가 띄우기도 불가능하다.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자 수가 1만3978명으로 전년보다 8.3% 늘면서,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27.3명)가 2014년 이후 가장 많았다. 박희승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자살 시도 건수는 16% 늘었는데, ‘경제적 문제’가 이유였던 게 28.8%나 늘어났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1.4% 성장에 그쳤고, 가계는 실질소득 감소와 고금리 부담에 큰 고통을 겪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자살 신고 건수는 1만7398건으로 지난해보다 7.8% 늘었다.



지금은 ‘소비여력 없는 가계’가 민생고의 핵심이요, 경기 악순환의 출발점이다. 진지하게 그 해법을 찾지 않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금투세 폐지가 민생’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 비극이다. 그냥 “과세를 더 유예하자”고 ‘비겁’을 선택했다면, 한국 정치가 이렇게 바닥까지 추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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