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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데스크 칼럼] 노벨상 휩쓴 AI, 한국의 제2 식민지화 부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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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맛을 구별할 수 있는지 물으면 대부분 당연하다고 답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2004년 미국 베일러 의대의 리드 몬태규 교수는 신경과학 권위지인 ‘뉴런’에 브랜드가 뇌를 속였지, 혀로 구분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눈을 가린 채로 콜라를 맛보게 하면 예상과 달리 코크, 펩시를 선호하는 비율이 거의 반반이었다. 시장 점유율과 달리 동전을 던져 앞뒤가 나오는 비율과 비슷했다.

그런데 시음에 앞서 콜라 캔 사진을 아주 짧게 보여주면 코카콜라를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연구진은 실험 도중 피실험자의 뇌를 촬영했다. 눈을 가리면 뇌에서 미각 영역만 제한적으로 반응했지만, 상표를 보여주면 뇌에서 정서나 기억, 학습을 담당하는 부위가 활발하게 작동했다. 소비자는 맛보다는 브랜드를 떠올려 특정 콜라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사람도 모르는 코크와 펩시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인공지능(AI)이 등장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지난 1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코크와 펩시를 구분하는 AI 전자혀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전에도 소믈리에를 모방한 전자혀가 있었지만 대부분 센서로 한두 가지 성분만 감지해 코크와 펩시를 구분할 수 없었다.

AI 전자혀는 콜라 종류는 물론, 같은 우유라도 수분량이 얼마나 다른지, 커피 블렌드에 어떤 원두를 섞었는지도 구별했다. 단순히 센서로 화학 물질을 찾는 게 아니라 숱한 센서 검사 결과를 AI가 학습해 스스로 미묘한 맛의 차이를 터득한 것이다. 이런 AI는 아무리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워도 펩시를 코크라 하지 않는다.

AI가 인간을 돕는 도구를 넘어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존재로 떠올랐다. 지난주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각각 오늘날 AI의 토대가 된 인공신경망을 개발하고, 단백질 구조를 해독·설계하는 AI를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이를 두고 100년 전 양자역학이 과학을 흔든 것처럼 이제는 AI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기초과학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과학자들이 인정받는 건 AI를 개발한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은 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지난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있는 노키아 벨 연구소는 AI로 위협받는 직업을 발표했는데 1~9위가 모두 과학기술 전문직이었다. 특히 심혈관(1위), 방사선의학(3), 자기공명영상(MRI, 5), 교정(7), 신경과(9)처럼 병원의 전문직들이 많았다.

과거에는 사무직이 가장 먼저 AI에 타격을 받는다고 생각했지 두뇌가 뛰어난 의사나 과학자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I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이미 과학·의학 관련 직업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주 국내 한 의료 AI 기업이 주최한 뇌질환 상태 예측 대결에서도 AI는 40명의 영상 판독을 12분 4초만에 정확도 72%로 마쳤다. 의사들은 평균 45분 43초 걸려 50%를 기록했다

기업들은 이미 AI에 운명을 걸고 있다. 한 예로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AI에 신약 개발을 맡기기 시작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이 돌아간 AI가 신약이 공략할 단백질 구조를 빨리 해독할 뿐 아니라, 치료제가 될 세상에 없던 단백질 구조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이런 노력이 실패하면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단숨에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100년 전 양자역학에 무지하던 한국이 식민지가 됐듯 말이다.

정부도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출범’을 선포하고 민간과 함께 65조원을 투자해 2027년까지 미중(美中)을 따라잡을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지, 방향성은 맞는지 의문이다. 여전히 위에서 결정하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AI가 힘을 받으려면 학습할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영국은 2006~2010년 정부 주도로 50만명의 유전자를 해독하고 그들의 의료기록까지 모아 바이오뱅크(UK Biobank)를 구축했다. AI는 그 데이터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은 과학자들의 유전자 해독 능력이나 의사들의 임상 능력이 세계적 수준이지만, 각종 규제에 막혀 K바이오뱅크를 만들지 못했다. 대통령이 AI 강국을 꿈꾼다면 부처에 산적한 데이터 획득, 공유 관련 규제부터 없애주길 바란다.

이영완 기자(yw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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