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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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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비사⑬] 박정희, 외교부 만류에도 '北 물밑 접촉' 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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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1979년 광복절 맞아 北 공관 연락
목적에 '남북대화 재개 분위기 촉진' 명시
"시기 부적합하다"...외교부 난색에도 추진


더팩트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박정희 대통령이 1978~1979년 광복절을 맞아 북한 해외 공관과 접촉을 지시하고, 남북 대화 재개를 도모했던 당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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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박정희 대통령이 8·15 광복절을 맞아 북한 해외 공관과 접촉해 남북 대화 재개의 분위기를 촉진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시기와 상황이 부적합하다'는 외교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년 연속으로 이같은 시도를 감행했다. 하지만 북한 측은 우리 정부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박 대통령은 1978년 6월 23일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 5주년을 맞아 담화문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조국 통일의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대화하고, 교류와 협력을 통해 평화 통일의 기반을 착실히 다져나가자"고 밝혔다. 앞서 박 대통령은 8·15 선언(1970년), 남북적십자회담 제의(1971년), 7·4 남북공동성명(1974년) 등을 통해 남북 대화교류를 지속 추진한 바 있다.

그 일환으로 박 대통령은 1978년 8월 15일 제33주년 광복절을 '민족 동질성 회복의 날'로 명명했다. 이를 위해 당일 24시간 동안 대북 비방 선전활동을 중단하고, 광복절 당일 북한 해외 공관과 식사 자리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접촉 대상으로 분류된 북한 해외 공관은 모두 26곳으로 남북 모두 공관을 두고 있던 국가였다.

당시 문건을 살펴보면 정책 구상의 목적은 △민족적 일체감을 바탕으로 한 북한의 대남 적대 자세 완화 △우리 정부의 주도적 평화 지향 노력을 국내외에 부상 △남북대화 재개 분위기 촉진 등에 있었다. 이를 위해 북측과 접촉 시 '남북 상호 이해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정치적 성격을 띤 상호 비방은 삼가라는 당부가 덧붙여졌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북한 해외 공관은 없었다. 당시 외교부가 정리한 북한 측 반응은 다음과 같다.

인도네시아 : "네. 네." 대답만 함(수화기 내려놓고 12:40~12:57 간 무응답, 긴급회의하는 듯).

아프가니스탄 :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수화기 놓음. 약 5분간 무응답(대사에게 보고하는 듯). "우리는 할 말 없으니 다시 전화 마시오"라고 전화 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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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가운데)이 1979년 '남북대화 촉진 운동'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박 대통령은 그해 북한 해외 공관과의 두 번째 접촉을 시도했지만 북측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대통령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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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 두 차례 전화를 모두 일방적으로 끊음.

말레이시아 : "만나는 것도 좋지만 통일에 아무런 도움이 없는 줄 알면서 만날 필요 없고 7·4 공동성명 정신 구현이 급선무다"라고 거절. 대사의 전언이라면서 "초청에 대해 감사하나 7·4 공동성명 정신이 실현돼 통일이 이뤄진 다음에 만나는 것이 순서"라고 거절.

방글라데시 : "우리 그럴 사이 없소"하고 전화 끊음(당황한 음성). "우리는 당신들 상대 안 해, 왜 접촉하려 드는 거요"하고 일방적으로 전화 끊음. "우리 통일광장(?)에서 만납시다. 우선 침략자들이나 남조선에서 몰아내시오"라며 일방적으로 전화 끊음.

버마(미얀마) : 웃으면서 "짬이 없어요"라고 응답. "알아보지요"라고 응답. 이후 아무 반응 없음.

오스트리아 : (담당자) 출타 중이라고 응답. 용건 먼저 요구하며 초청 내용 전달 실패(의식적으로 회피).

핀란드 : 반응 없음.

덴마크 : "대사 없어요. 언제 올 지 몰라요." 직원과도 통화 불능.

스웨덴 : "대사 출타 중"이라고 응답. "초청 감사하다. 이번에는 곤란하고 적절한 기회에 만나 대화할 수 있을 것이고 특별 용건이 있으면 따로 기회 갖는 것이 좋겠다." "통일이 되면 형제같이 지낼 수 있고 적당한 기회에 조용히 만날 수 있다"를 반복. "대사에게 뜻을 전달하겠다."

스위스 : "감사하나 바빠서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봅시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연락 주기를 요청하자 "그럽시다"라며 부드러운 반응을 보임.

노르웨이 : "8·15 행사로 분주해 응할 수 없다"고 거절. "충분한 시일을 두고 초청함이 외교 관례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하루 전날 이같이 초청하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부언. 인사는 비교적 점잖은 편이었음.

이란 : "부재중"이라고 응답. "동족끼리 만나서 얘기하는 건 좋지요"라며 소극적 반응. 약 1분 통화 중단 후 "대화나 접촉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나 식사 모임은 통일된 후에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라며 부드러운 반응을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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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1979년 주변 정세 변화 등을 이유로 두 번째 대북 접촉은 부적합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는 "각하의 재가를 얻었다"며 외교부를 압박했다. 결국 8개 공관에 대한 연락이 시도됐지만 북한 측은 우리 정부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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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 "민주 인사 석방하고 주한미군 철수하면 식사도 할 수 있을 것. 중앙정보부 지시에 의한 것인가?" 적개심에 찬 야유조 반응을 보임.

수단 : 당황하면서 "좋은 생각이며 감사하지만 할 일 많아서 안 되겠다"라고 응답. 예상보다 당황하는 기색이 적었고 부드러운 태도로 예의를 갖춰 응답. 이후 추가 통화에서 경직된 목소리로 "아무도 없어요"라고 전화 끊음. 대단히 긴장된 태도로 통화를 회피하는 듯. 이후에도 "바빠서 안 되겠다. 그만둡시다"라고 전화 끊음.

가봉 : "미제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수립,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하겠다는 자세를 갖기 전에는 만날 수 없다"고 거절.

우간다 : "우리는 바쁩니다"라고 응답. 우물쭈물 말꼬리를 흐림.

에티오피아 :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

세네갈 : 머뭇거린 후 언성을 높이며 "쓸데없는 생각 말고 7·4 공동성명에 입각, 통일할 생각이나 해라"라고 대답.

자이레(콩고민주공화국) : 반말과 욕설로 불응하며 전화 끊음.

씨에라레온(시에라리온) : 누구냐고 문의해 신분을 밝히자 전화 끊음.

이렇듯 북한 측은 정부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듬해 광복절에도 외교부에 동일한 지시를 내렸다. 이에 외교부는 난색을 보였다. 외교부는 "대(對)북한 대책에 많은 변동이 초래될 것이 우려된다"며 "제3국에 대한 영향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고, 아국 공관원의 준비상 문제점 등을 고려해 시간을 두고 좀 더 세밀히 검토한 후 최종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미·중 관계 정상화, 중·일 관계 발전, 미·소 제2차 전략무기제한조약(SALT2) 타결, 중·소 관계 개선 모색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 개편 과정에서의 유동성과 불안정성이 있다"며 "주변 정세 및 북한의 책동을 고려하고 금년 초 시도된 남북대화의 중단 현실을 감안할 때 북한 공관원을 초청해 접촉하는 시도는 그 시기와 상황에 전혀 부적합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중앙정보부는 "이미 대통령 각하의 재가를 얻은 사항이므로 실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압박했고, 결국 외교부는 8개 공관으로 추려 연락을 시도하기로 했다. 당시 외교부가 접촉한 북한 측 공관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위스, 수단, 세네갈 등이었다. 하지만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의 제안을 수락한 북한 해외 공관은 한 곳도 없었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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