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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몸 파는…" 어린 딸 유치원에 도착한 문자: 누가 텍사스촌 여종사자를 죽음으로 몰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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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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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중순. 미아리 텍사스촌의 여종사자 A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A씨의 딸은 홀로 남았다. 익명의 누군가가 A씨의 지인들에게 '몸을 팔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게 화근이었다. 이 메시지는 딸이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에게까지 전달됐다.

# A씨의 동료들은 A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여러 매체에 알렸지만 관심을 갖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A씨의 죽음을 이렇게 '무관심'으로 덮어선 안 된다. 여기엔 불법사채, 성매매 산업의 착취구조 등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불편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더스쿠프가 '홍기자의 그림자 밟기'를 통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A씨의 죽음을 들여다봤다.

지난 9월 22일, 전라도의 한 펜션에서 미아리 텍사스촌 여종사자 A(35)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 민지(가명)를 홀로 키우고 있었다. A씨는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주5일을 먹고 자며 일했다. 민지는 대전에 있는 아버지 집에 맡겼다. 아버지는 뇌경색이 있어 민지를 돌봐주는 이모를 따로 고용했다. A씨는 쉬는 날마다 민지에게 달려갔다.

A씨의 동료는 "민지를 보고 오는 날이면, 민지 사진을 잔뜩 찍어 와, '언니, 민지 먹는 것 좀 보세요. 저는 민지 덕분에 살아요'라고 말하곤 했다"며 "피보다도, 살보다도 중요한 딸내미를 두고 눈을 감았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를 추측하기 위해선 시계추를 9월 9일로 돌려야 한다. 그날 A씨의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A씨는 미아리에서 몸을 팔고 있으며, 지인들의 개인정보를 팔고, 대부업체에서 돈 빌리고 잠수를 탔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문자가 100통 가까이 날아온 지인도 있었다. 이 문자는 민지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의 교사에게도 갔다. 유치원엔 문신으로 팔뚝을 채운 남자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A씨의 마음이 가장 크게 무너졌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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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들은 불법 사채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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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죽음 후, A씨의 동료들은 각종 매체에 '안타까운 죽음'을 알렸지만,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A씨는 빈소조차 마련되지 못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죽음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우리가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 문제➊ 익명의 소행과 무방비 = A씨의 개인정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지인들에게 퍼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A씨에게 억하심정을 품은 지인의 소행일 수도, 손님의 소행일 수도 있다. 이처럼 한번 개인정보가 유통되면 당사자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범죄자를 찾는 건 쉽지 않다.

다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있다. A씨는 '살인적인' 이자가 붙는 불법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돈을 빌리며, 자신의 가족관계증명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지인의 연락처, 사진 등을 담보로 넘겼다.

불법 대부업체 일당은 A씨의 개인정보와 사진을 편집한 동영상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동영상 속 A씨가 들고 있는 종이엔 '50만원을 빌렸으며, 돈을 갚지 않을 시 가족, 지인, 회사 동료에게 연락을 해 채무독촉을 해도 무방함'이란 내용이 자필로 적혀 있었다. 해당 SNS 계정에는 다른 피해자들의 동영상도 함께 있었다.

불법사채 상담을 받아본 A씨의 동료 B씨는 "봉고차에서 만났는데, 휴대전화를 빼앗아 자주 연락한 연락처 10개 가량을 적어갔다"면서 말을 이었다. "100만원을 빌리려고 했는데, 수수료 15만원을 요구하고, 상환기간이 지나면 일주일에 이자 20만원이 붙는다고 했다. 상환기간을 시간까지 정해주고, 시간을 넘기면 이자가 1분에 10만원씩 붙이는 곳도 있었다."

A씨가 입은 피해는 모두가 당할 수 있다. 실제로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ㆍ상담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ㆍ상담 건수는 2020년 7351건에서 지난해 1만2884건으로 75.4%나 증가했다. 불법사금융의 피해에 시달리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이는 A씨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를 규명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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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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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➋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목소리 =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은 또 있다. 편견이다. 미아리 텍사스촌 여종사자들은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수많은 편견에 시달린다. A씨의 동료는 이런 말을 남겼다.

"불법사채꾼들의 협박이 심해지니까 A씨도 수사기관에 신고할지를 고민했어요. 하지만 일선에서 자신을 꺼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지 신고를 이내 포기하더라고요." 어쩌면 A씨의 고민은 텍사스촌 여종사자들의 '역설적 상황'을 대변할지 모른다. 성매매 여성이란 이유로 신고는 어려운 반면, 성매매 여성이란 이유로 불법 사채의 먹잇감이 되기는 쉽기 때문이다.

이하영 여성인권센터 '보다'의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미아리 텍사스촌 같은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하면 불법 사채업자들이 너무나 쉽게 따라붙죠. 업주들이 여성들에게 사채업자를 소개하는 것도 흔한 일이에요. 불법 사채업자들은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돈을 빌려주고, 돈을 못 갚으면 성매매 여성이라는 것을 빌미 삼아 가족들이나 주위에 그것을 알리며 협박해요. 흔하고 전형적인 수법이죠. 불법 사채업자들은 성매매 생태계를 이루는 일원입니다. 이번 죽음에 얽힌 착취구조를 잘 짚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소장은 "성매매 여성들은 성산업의 피해자인데도 성매매를 했다는 것만으로 손가락질을 받는다"면서 "가족들과 지인이 성매매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가족들에게서 버림받거나 사회에서 비난받을 두려움 때문에 압박감이 굉장히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성매매 여성 앞에 놓인 편견이 그들이 마주한 현실마저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아리 텍사스촌 여종사자들은 지금 심각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재개발 절차가 진행되면서 여종사자들이 머무를 공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성매매 산업을 일으킨 업주들은 업장 크기에 따라 2000만원에서 5000만원의 '이사비용'을 보상받았지만, 세입자도 주민도 아닌 여종사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며 여성들의 성을 착취해온 업주들은 나랏돈을 받고, 여종사자들은 맨몸으로 쫓겨나기 직전인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참고: 더스쿠프 통권 598호 '성 착취 포주는 지원금 받는데, 미아리 텍사스촌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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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일한 것이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곳에서 '일할 기회'를 받았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신박진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책팀장은 이렇게 꼬집었다.

"미아리 텍사스촌은 폐쇄를 앞둔 상황이어서 여종사자들은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나 지자체는 여종사자들에게 눈에 보이는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가와 지자체가 여성들의 지원 사업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미아리 텍사스촌은 재개발로 인한 폐쇄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성착취까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어딘가에서 A씨처럼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여성종사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A씨의 죽음에 얽힌 성매매 산업의 착취구조를 지금이라도 따져봐야 하는 이유는 차고넘친다. '편견' 뒤에 던져놓을 문제가 아니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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