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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가족들 위해 신내림 받았지만... 두 딸은 차례로 정신병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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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믿음 : 무속 대해부>
아픈 두 딸 키우는 엄마, 돈이 절박했던 남자
영험하다는 무속인에 굿 비용 수천만원 전달
'신엄마' 의심스런 행태… 사기 유죄 나왔지만
두 딸 차례로 정신과 진단… 병원 "원인 몰라"
"사기꾼과 무속인 그 경계서 혼란스러울 뿐"
엄마, 누가 날 어떻게 하려고 해. 자취방으로 빨리 와 줘.
한국일보

2020년 정신병에 시달리던 김희은씨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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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0일 늦은 저녁. 대학생인 큰딸(김희은·가명)이 대전의 자취방 구석에서 떨고 있었다.

"희은아, 무슨 일이야. 누가 왔어?"

잠도 못 자고 밥도 안 먹은 것 같았다. 눈은 퀭하다 못해 움푹 파였고, 눈에 띄게 수척했다. 큰딸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사람은 갔어."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았다. "엄마 세상이 이상해, 내가 가르쳐야 될 거 같아." 새벽까지 딸은 잠을 자지 않고 휴대폰을 뒤적이며 전화하거나, 눈을 뒤집고 허공에 양손을 흔들었다. 급기야 수면제까지 먹였지만 딸의 이상 행동은 계속됐다.

결국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상세불명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장애가 생긴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나마 딸이 일주일간 동영상 편집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게 원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2021년과 2023년에도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이후 날마다 딸이 잘못될까 걱정하던 박소연(가명)은 한동안 잊고 있던 이름을 떠올렸다.

이미운(가명).

이미운은 누구인가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올해 8월 30일 오후 3시. 박소연을 만나러 대전의 한 음식 배달 전문점을 찾았다. 밖에서 가게 내부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좁았다. 안은 너저분했다. 경찰 수사 자료와 고소장들이 책상 위에 나뒹굴었고 벽면에는 소연이 두 딸과 함께 미소를 머금은 채 찍은 사진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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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 이미운.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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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운은 누구인가요?

소연이 기자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한옥을 배경으로 한, 깔끔한 차림의 중년 여성 사진이었다. 그는 이미운을 무속인이자 자신의 '신엄마(신내림 굿을 해준 스승 무당)'라고 소개했다.

소연은 이미운이 항상 셔츠 차림에 면바지를 입었다고 했다. 질끈 묶은 머리에 통통한 풍채, 그리고 수수한 모습 탓에 말 붙이기 편한 동네 언니 같았다.

2015년 가을, 소연은 "새 남자친구와 궁합을 보고 싶다"는 친모의 부탁을 받고 지인들을 통해 괜찮은 무속인을 소개받았다. 이미운도 그중 한 명이었다.

며칠 뒤, 소연은 지인이 운영하는 충남 논산의 한 꽃집에서 이미운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에 놓인 피자를 함께 먹던 이미운이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근데 당신 엄마가 문제가 아니야. 당신이 신내림을 받아야 할 거 같아. 신가물(신의 제자가 될 소양과 운명)이 있어."

신내림? 이게 뚱딴지같은 무슨 소리인가. 소연은 스스로 신기가 있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 소연은 먹던 피자를 내려놔야 했다.
딸 괜찮아? 신을 거부하면 정신적으로 아팠을 텐데. 무당이 될 수도 있어.

소연의 둘째 딸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엄마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속 깊은 아이였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섬세한 심성은 감정 기복으로 변했다. 우울증을 자주 호소했고 학교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이미운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소연은 고민 끝에 딸을 살리겠다는 마음에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기자님, 어떤 엄마가 딸을 무당으로 살도록 내버려두겠어요."

2015년 12월 2일, 눈이 쌓인 계룡산에서 소연은 신내림을 받았다. 한복을 입은 채 만 원짜리 지폐 7장이 띄워져 있는 물 항아리 위에 섰다. 동서남북으로 절을 하고 춤을 췄다. 다리를 다쳐 절뚝이면서도, 소연은 온몸을 떨며 하늘에 인사를 올렸다.

다만 신내림 의식을 마치고도 확신이 없었다. "아무 느낌이 없어요. 제가 과연 무당이 될 수 있을까요?" 불안해하던 소연을 쳐다보더니, 이미운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너는 3년 뒤 신당을 차릴 거야. 그전까진 나를 도우면 돼." 그때는 이미운을 믿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또 다른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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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강정수씨가 8월 22일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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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운은 무속인인가요?

"절대 아니에요. 사기꾼이에요 사기꾼."

대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정수(가명)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았다. 정수는 2019년 이미운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미운은 2021년 2심에서 일부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수 입장에선 혐의 입증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 속에서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그래서 정수는 이미운이 사기꾼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정수는 2015년 봄, 이미운을 처음 만났다. 이미운에게 신내림을 받은 친누나가 그를 영험한 무당이라고 소개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정수는 동아줄 붙잡는 심정으로 이미운을 찾아갔다. 이미운은 상냥한 말투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그를 위로했다. 이후엔 힘든 고민까지 털어놓으며 누나 동생 관계로 지냈다. "그땐 몰랐죠. 정말 몰랐어요."

2017년 1월, 이미운은 굿을 권하기 시작했다. "정수야, 너한테 지금 귀인이 있는데 못 잡는 거 같다." 이미운은 경제적 어려움을 풀 수 있다며 재수굿(재수가 있기를 기원하는 굿)을 권했다. 1,500만 원 상당의 작두굿(작두를 활용해 신께 정성을 올리는 굿)과 운맞이굿(운을 들이는 굿)까지 했다. 정수는 '카드깡'을 통해 굿값을 마련했다.

"돈은 많이 들었지만, 이미운을 믿었죠." 정수는 담배 하나를 또 꺼내 물었다.

의심스러웠던 이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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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씨가 이미운의 딸 소유 카페에서 일한 날을 적어놓은 달력들. 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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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씨는 이미운이 무속인이 아니라 사기꾼이라고 하던데요.

소연도 이미운을 의심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신딸로서 이미운을 따라다니던 소연은 2017년 굿을 하러 온 정수와 그의 누나를 자주 만났다. 그런데 이미운은 소연과 둘이 있을 때마다 정수의 누나를 험담하곤 했다. "쟨 아직도 나한테 신내림을 받은 줄 착각하고 있어. 동생도 몰라."

소연은 이미운이 신도들의 뒷얘기를 할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비 둬." 비상식적인 이미운의 행동은 의심을 키웠다.

이미운은 소연에게 3년 뒤 제대로 된 무당이 될 거라고 했지만, 그날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의구심만 커졌다. 2018년 7월 이미운은 신도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한 번은 카페가 팔리도록 도와달라는 신도를 위해 굿을 진행한 뒤 "인수를 희망하는 신도가 나타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운의 친딸이었고, 이미운은 이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소연에게 신신당부했다.

더 당황스러운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이미운은 소연에게 딸 대신 카페에서 일을 하라고 시켰다. 무당은 신의 말씀을 전하는 일 이외에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던 그였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미운은 "신령이 괜찮다고 했다"며 얼버무렸다.

사기를 깨닫다


-이미운을 사기꾼이라고 확신하게 된 시점은 언제였나요?

"2018년 9월 11일이요." 정수가 말했다.

"신딸이 요즘 통 안 보이네요? 소연씨였나?" 그날 대전의 한 굿당에서 정수가 이미운에게 물었다.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지네 엄마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는데, 장사가 잘되나 봐." 정수는 무속인이 카페 일을 해도 되냐고 물었지만 이미운은 "신령께서 허락하셨다"는 답만 내놨다. 그 뒤로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운맞이 굿(대운을 들이는 굿)을 준비하는 이미운의 심기를 건들고 싶지 않았다.

그간 정수는 없는 돈을 모아 8,000만 원 상당을 굿비로 냈다. 어머님이 올해를 넘기기 어렵다고 해서, 조카가 군대에서 상급자를 죽일 팔자라고 해서, 형에게 귀신이 붙어 망나니짓을 한다고 해서 굿을 했다. "아내가 귀신에 씌여 있어" 이혼합의 굿도 진행했다. 물론 나아지는 건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미운은 대운맞이 굿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설득했다. 그러나 마지막 굿을 진행한 뒤 연락이 끊겼다. 정수는 공주시에 있는 이미운의 신당과 계룡산까지 찾아 올라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계룡산에서 내려오던 날, 정수는 그간의 세월을 돌아봤고 자신이 사기를 당했음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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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씨가 이미운에게 받은 현금봉투에 날짜를 적어놓았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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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소연은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전부터 이미운이 폐쇄회로(CC)TV로 감시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각지대로 갈 때마다 "일하지 않고 왜 도망갔느냐"고 독촉했기 때문이다.

소연은 억울했다. 12시간씩 두 달 반을 무일푼으로 일했다. 영험한 신엄마라면 이런 소연의 노력을 모를 리 없다. 결국 2018년 10월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했고, 이미운 밑에서 지내던 소연의 신딸 생활도 정리됐다. 소연은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사기당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수는 이미운을 경찰에 고소했다. 소식을 들은 소연은 편취 시점을 특정하도록 정수를 도왔다. 이미운이 굿을 할 때마다 소연에게 건넨 일당 봉투에 날짜를 적어놓은 게 큰 역할을 했다. 2심 재판장은 이미운의 무속인 신분을 의심하듯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피고인, 유죄가 될지 무죄가 될지 모시는 신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재판이 끝난 뒤, 이미운은 정수에게 문자 하나만 남기고 사라졌다. "세월이 가면 다 알게 될 거고 그때 한번 짚어보자." 그렇게 이미운의 정체성이 정리되는 듯 보였다. 소연도 수사과정을 지켜보며 이미운이 사기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미운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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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일 신내림을 받은 박소연씨가 계룡산에 서 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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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미운 말대로 딸이 정신병에 걸린 거군요.

소연은 벽에 걸린 두 딸의 사진을 바라봤다. 소연은 이미운과 절연한 뒤 무속신앙을 멀리해왔다. 하지만 큰딸의 정신병이 반복되고, 현대의학도 원인을 규명해주지 못하면서 재차 무속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게 만신(무당을 높여 이르는 말) 김모씨였다. 소연이 이미운의 신딸 생활을 할 때 친분을 쌓은 무속인이었다. 김씨는 소연의 딸을 위해 퇴마굿과 비방(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하는 무속행위)을 진행했다. 그가 내린 진단은, 이미운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해왔던 소연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기자는 9월 26일 김씨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봤다.

-큰딸은 왜 이상 증세를 보인 건가요?

"눈에 초점이 없고 계속 헛소리를 하더라고요. 성인 5명이 팔다리를 붙잡는데 이를 이겨낼 정도의 초인적 힘을 보였습니다. 결정적으로 몸에서 시궁창 썩는 냄새가 났어요. 이건 청결하지 못해 나는 냄새와 전혀 달라요. 저희는 그걸 '귀신 냄새'라고 하는데, 전형적인 빙의 현상이죠. 제대로 신내림을 안 해준 이미운 탓이 크다고 봅니다. 신내림 굿에도 거쳐야 할 제식이 있어요. △조상을 기리고 △잘못된 신령을 거르고 △올바르게 앉은 신들을 자정하고 △마지막에는 하늘에 고해야 하죠. 간소하게 해도 2박 3일은 걸리는데, 이미운은 하루 만에 끝냈어요. 제대로 된 신을 못 받아 혼령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였고, 그게 큰딸한테 간 거 같아요."

-이미운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일반인이 무속인 행세를 했느냐는 의미로 물어본 거라면, 사기꾼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다만 더 악질적인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돈벌이를 위해 무속을 이용한 사람이니까요. 소연씨도 신내림을 받아야 할 사람은 맞습니다. 하지만 때가 무르익지 않았죠. 이미운은 돈을 위해 막무가내로 소연씨에게 신내림을 시켰고, 그마저도 제대로 해주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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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씨 두 딸의 정신과 진단서.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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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은 지금 어떤가요.

소연은 큰딸뿐 아니라 둘째 딸의 상태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말했다. 정신과 진료 덕인지 무속의 힘인지 알 수 없지만, 큰딸은 현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큰딸은 자기가 정신병에 시달릴 당시의 기억이 전혀 없다. 소연에게 "엄마, 내 인생에서 몇 년이 사라졌다"고 말할 정도다. 근데 한시름 놓을 틈도 없이 이번엔 둘째 딸이 유사한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 둘째 딸은 증세가 악화할 때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거 같다"고 말하고 있다.

소연은 모르겠다. 무속은 허구일까 진짜일까. 이미운은 무속인일까 사기꾼일까. 두 딸은 우연히 차례로 정신병에 걸린 걸까 아니면 소연이 신내림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귀신이 장난치는 걸까.

소연은 모든 게 이미운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이미운을 고소했다. 경찰은 9월 9일 이미운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미운의 해명


9월 11일, 공주시의 한 골목길. 정원이 딸려있는 단독주택이 보였다. 그곳에서 어렵게 이미운의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정수씨) 사건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판사가 기독교 성향이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유죄를 받았다. 억울한 게 많은데 참고 넘어갔다"고 했다. 소연씨 사건에 대해서도 "꺼내고 싶지 않은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한국일보는 9월 26일 재차 이미운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하늘과 땅을 잇는 원초적 존재, 무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갑니다.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범죄의 온상이 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한국일보는 석 달간 전국의 점집과 기도터를 돌아다니며 우리 곁에 있는 무속의 두 얼굴을 조명했습니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공식적으론 어디에도 없는 무속의 현주소도 파헤쳤습니다. 문화 코드로 자리잡은 무속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모색했습니다. 10월 14일부터 5회에 걸쳐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방치된 믿음 : 무속 대해부> 시리즈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이지수 인턴 기자 ssu14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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