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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1만개씩 나가는 가상계좌
입금 전용 계좌인 가상계좌는 은행과 계약한 PG(결제대행)사가 운영을 대행한다. 모계좌 1개로 1만개의 가상계좌 번호를 생성할 수 있다. 당초 가상계좌는 PG사가 이를 쇼핑몰 등 가맹점에 공급해 무통장입금에 활용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당수가 보이스피싱이나 온라인 도박 등 불법적으로 자금을 송금하는 창구로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에 1만개까지 만들 수 있다 보니 개설이 까다로운 대포통장에 비해 계좌번호를 구하기 월등히 쉽기 때문이다.
가상계좌를 불법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금융감독원이 칼을 뽑았다. 1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광주은행 등 일부 은행이 발급한 가상계좌에 대해 이용 중단 조치를 내렸다. 다수의 인원으로부터 수시로 입금이 이뤄지는 의심 거래가 확인되거나 신고가 들어올 경우 해당 은행에 소명을 요청하고 정상 거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되면 해당 계좌번호를 정지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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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개 정지에도 은행 제재는 없어
지금까지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이용이 중단된 계좌만 100만개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모계좌 1개당 1만개의 가상계좌가 만들어졌다고 할 때 그중 하나만 불법 정황이 드러나도 가상계좌 전부를 중지시키고 있다”며 “집계하긴 어렵지만 지금까지 적어도 수십만개 이상의 계좌가 정지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 가상계좌 관리 부실을 이유로 은행을 제재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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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이 가상계좌 상당수를 정지했다고는 하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불법도박 등에 가상계좌가 주로 이용된다고 지적한다. 최근 들어 주로 악용되는 건 신협 등 상호금융이나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다. 카카오뱅크의 모임통장도 불법도박 계좌 등으로 악용된 바 있지만, 지난 3월 모임통장 약관 개정으로 재개설 제한을 두면서 사용이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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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금융권 가상계좌 횡행” 지적
불법도박에 쓰이는 계좌를 추적하고 있는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는 최근 들어 2금융권 가상계좌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장은 “가상계좌를 유통하는 조직이 저축은행이나 신협‧수협 등 상호금융권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며 “가상계좌를 발급하는 은행이 ‘불법으로 쓰일지 몰랐다’고 끝날 게 아니라 발급 주체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 계좌를 개설할 때는 거래자 실명이 확인돼야 하지만, PG사가 가상계좌를 사용할 가맹점을 모집하는 데는 이 같은 의무나 제한이 없다. 은행과 계약해 가상계좌 운영을 대행하는 PG사가 사실상 무한대로 계좌를 만들 수 있는 구조다. 은행권에선 “PG사를 통해 발급된 가상계좌의 용처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PG사와 계약을 하는 단계에서부터 은행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올해 중으로 은행의 가상계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대대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또 제2금융권도 은행 수준으로 가상계좌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업계와 협의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중은행뿐 아니라 2금융권도 가상계좌가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하겠다는 게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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