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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김조광수의 좌절' 이후 10년...사법부 동성결합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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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커플 11쌍 동시다발 소송 전망]
2006년 성전환자 첫 성별 정정 등 '진전'
한계 불구 "법규범 판단 변화 추세" 기대
한국일보

동성 연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소성욱(왼쪽)씨와 김용민씨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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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동반자 관계에서 꾸리는 가정공동체도 여느 사람과 똑같이 소중한 가정공동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중)

올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자격을 인정하며 '동성 결합'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것은 민법상 인정받지 못했던 동성 결합을 사회보장제도(건보) 안에 편입시킨 역사적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이 "건보 편입과 동성 배우자 인정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 판결이 궁극적으로 '동성결혼 인정'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법조계 평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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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건보 자격 인정 판결 이후 3개월 만에 10일 동성 커플 열한 쌍이 "혼인신고를 수리해 달라"는 소송을 내겠다고 밝히면서, 이제 동성 결합 문제는 최종 종착점인 '동성부부 법적 권리 인정 여부'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단계에 이르렀다.

법원은 2014년 "혼인은 기본적으로 남녀의 결합 관계"라는 이유를 들어 영화감독 김조광수 커플의 혼인신고서 불수리 불복 소송을 각하했다. 그러나 그 이후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용 △동성 군인 간 성관계 처벌 불가 △동성 동반자 건보 자격 인정 등, 성소수자 권리를 좀 더 보장하는 쪽으로 판례를 바꿔 왔다. 이 추세를 감안하면 이번 소송을 계기로 동성부부가 민법이나 가족법 테두리 안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006년 첫 성별 정정 허가 '첫걸음'

한국일보

올 6월 서울 퀴어퍼레이드 참석자들이 서울 중구 종각역 앞에서 을지로 입구까지 도심행진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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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성전환자(트랜스젠더) 성별 정정을 처음 허가한 건 2006년이다.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밝힌 이 판결로 성별 정정의 길이 열렸다. 이후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가족관계등록예규)을 마련해 하급심이 참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판결 18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한계는 여전하다. 법원 예규만 있을 뿐 법령에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결국 성별 정정 인정 여부는 각 재판부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 최근 한 하급심 재판부(청주지법 영동지원)는 이 예규를 성별 정정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 법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성기 성형 등 성확정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 여성(출생 당시 성별은 남성이지만 스스로 여성으로 인식하는 것)' 5명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면서 재판부는 "법률이 아닌 지침이 기본권 제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은 법률유보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움직이는 법원


2022년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미성년 자녀'의 유무를 성별 정정 요건으로 따져선 안 된다고 보며 11년 전 판례를 뒤집기도 했다. 미성년 자녀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제한되어 왔던 것인데, 대법원은 "성전환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따른 성을 진정한 성으로 법적으로 확인받을 권리를 가진다"며 이를 허가했다.

대법원은 또 같은 해 동성 군인이 사적 공간에서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면 군형법의 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 왔고, 사법부도 그 변화를 따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 주목받았다. 이 밖에도 성소수자 재단의 재단법인 설립 허가(2017년), 성소수자에 대한 공공시설 이용 제한 금지(2022년) 등 판결도 이어졌다.
한국일보

2013년 12월 김조광수(왼쪽), 김승환 커플이 혼인신고서 피켓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 두 사람은 동성 간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결국 이를 각하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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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건보의 피부양자 관련 실질적 혼인 관계인 동성 동반자의 편입을 인정한 것도 사법부의 '빠르진 않지만 확실한 변화' 움직임을 보여준 판결로 평가받는다. 아직 '동성혼 인정'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성소수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혼인평등'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에 소송을 주도한 '모두의 결혼'의 대리인단에 속한 송지은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이채)는 "돌봄과 부양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동성이란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문 안에는, 다양하게 변화하는 가족 결합에 국가 제도가 부응해야 한다는 설명이 있다"면서 "이번 혼인신고 인정 요구 소송은 한국 사회 법규범 판단이 변화해 왔고, 다른 국가들에서도 동성혼에 대한 변화된 판단을 내리는 추세라는 점을 강조해 제기하는 소송"이라고 설명했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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