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준중형 세단 제타. 사진=폭스바겐그룹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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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 셰어 폭스바겐그룹코리아 사장이 지난 8월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신형 투아렉 신차 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폭스바겐그룹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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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독일 대중 자동차 브랜드 폭스바겐이 올해 국내 시장에서 치욕적인 성적표를 받아들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2019년 이후 5년 만에 연간 판매량이 1만대선을 밑돌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때 국내 시장에서 3만대 이상의 차를 판매하며 수입차 시장 빅5의 반열에 올랐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10일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폭스바겐 브랜드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5916대의 차를 판매하는 데 끼쳤다. 이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 진출한 독일 자동차 5개 브랜드의 판매량 중 최하위 수준이다.
브랜드별 연간 누적 판매량 순위에서는 9위에 오르면서 어느 정도 체면치레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예전의 영광을 생각한다면 매우 초라한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디젤 게이트 사태' 이후 국내서 가시밭길 지속
폭스바겐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수입차 시장을 대표하던 인기 브랜드였다. 지난 2015년에는 연간 판매량이 3만5778대를 기록하며 BMW,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어 3위에 오를 정도로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15년 폭스바겐 본사의 디젤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한국 수입차 시장에도 상당한 충격파를 안겼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이 사태의 영향으로 2016년 하반기부터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폭스바겐코리아의 월간 판매량 현황을 살펴보면 2016년 11월부터 2018년 2월까지 무려 1년 3개월간 차를 1대도 팔지 못한 것으로 나와 있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 3월부터 판매를 재개했으나 이미 떠난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지는 못했다.
2020년 1만7615대를 판매하며 판매 재개 이후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이후 뾰족한 반등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1만247대 판매에 그치고 말았고 올해는 3분기 말까지 6000대 미만의 판매량에 그칠 정도로 어려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폭스바겐의 올해 월평균 판매량은 657대다. 지난 8월 1445대의 차를 판매하며 반등의 신호탄을 쏘는가 했지만 이는 전기차 ID.4를 대폭 할인 판매한 영향이 크다. 실제로 ID.4는 8월에만 911대가 팔렸으나 9월에는 267대로 판매량이 급감했다.
현재의 영업 페이스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폭스바겐의 올해 국내 누적 판매량은 8000대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할인 프로모션 등으로 판매량 증가를 꾀할 수도 있겠으나 ID.4의 사례에서 보이는 것처럼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폭스바겐의 연간 판매량이 8000대 미만에 머무른다면 디젤 게이트 사태 이후 연간 최저 판매량 기록을 경신하게 되며 2019년 이후 5년 만에 수입차 시장 내 '1만대 클럽' 대열에서 다시 이탈하게 된다.
사양길 접어든 디젤 車 여전히 고수…판매 부진 자충수 작용
한때 승승장구했던 폭스바겐이 이처럼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풀이된다.
우선 이렇다 할 인기 차종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폭스바겐 측이 시류를 읽지 못한 채 디젤차 판매에만 주력한다는 점도 문제다. 디젤 게이트 사태 이후 폭스바겐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신뢰 회복이 여전히 더디다는 점도 폭스바겐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수입차의 모델별 판매량 순위 상위권에서 폭스바겐의 제품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전기차 ID.4가 2119대로 18위에 있고 준중형 제타가 1341대 판매돼 29위에 머물러 있다. 이를 제외하면 전부 1000대 미만의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지난 8월 초 준대형 스포츠 다목적 자동차(SUV) 투아렉의 부분 변경 모델을 내놓으면서 신차 가뭄을 해소하는 듯 했지만 투아렉은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높기에 소비자들의 대중적 접근이 쉽지 않다. 실제로 투아렉은 최근 2개월간 58대 판매에 그쳤다.
폭스바겐코리아의 마케팅 기조가 시류를 읽지 못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국산차와 수입차를 막론하고 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의 대세는 하이브리드 모델이지만 폭스바겐코리아의 제품 포트폴리오에서 하이브리드차는 아예 없다.
특히 골프나 티구안 등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종 중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개발돼 이미 해외에서 판매 중이지만 국내 시장 도입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차 구매 희망 수요의 지속 감소로 디젤차 비중이 한 자릿수(9월 말 기준 3.1%)로 쪼그라든 상태지만 폭스바겐은 여전히 전체 판매량의 20% 이상을 디젤차로 채우고 있다.
폭스바겐의 연료별 제품 비중을 살펴보면 가솔린차 42.6%, 전기차 35.8%, 디젤차 21.5%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폭스바겐의 디젤차 판매 비중이 48.7%였음을 고려한다면 현재 수치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브랜드와 비교한다면 여전히 매우 높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젤차 판매 비중은 1.9%에 불과하고 BMW의 디젤차 판매 비중도 4.5%로 매우 낮다.
그럼에도 폭스바겐코리아 측이 디젤차 도입을 고수하는 것은 경영진이 시장 상황에 대한 이해보다는 아집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초 투아렉 부분 변경 모델 출시 당시 틸 셰어 폭스바겐그룹코리아 사장은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 디젤차를 찾는 마니아들이 많다"며 "폭스바겐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의 응답을 기다린다"고 언급한 바 있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한때 수입차 시장의 중심에 있던 폭스바겐이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경영진 측의 판단 착오가 가장 큰 문제"라며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시류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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