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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산란의 신비[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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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기진 교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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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탁 트인 것처럼 맑고 푸르다. 가을 햇살에 여름의 이불을 말리고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묵혔던 여름 빨래를 한다. 베란다에 널어둔 이불과 빨래가 가을 햇살과 바람에 뽀송뽀송 말라간다. 이런 날을 위해 무덥고 긴 여름을 견뎌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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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갑자기 하늘이 높아지고 날씨가 쾌적하게 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태양의 주위를 착실히 공전하는 지구가 오래전부터 만들어온 작품이다. 46억 년 전 우주의 소용돌이치는 가스와 먼지구름이 모여 지구가 만들어진 이래 줄곧 반복되어 온 사계절 풍경 중 하나다.

주말에 빨래를 널 때면 행복감을 느낀다. 총천연색 빨래 위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게 된다. 물리학자가 아니라도 저절로 질문하게 된다. 왜 가을 하늘은 높고, 저토록 파랄까?

하늘의 색은 해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태양이 우리 머리 위에 있을 때 하늘이 제일 파랗다. 태양 빛이 공기 입자와 만나면 산란이 일어난다. 이 산란 현상의 원리를 처음으로 밝혀낸 물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레일리 산란(Rayleigh scattering)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물리학자 레일리 경(Lord Rayleigh)은 대기 중의 작은 입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빛의 산란 현상을 최초로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태양 빛은 대기 중에 존재하는 산소나 질소 등의 작은 입자들을 만나면 산란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때 짧은 파장의 파란빛이 더 많이 우리 눈에 도달한다. 그래서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해가 질 때 하늘이 붉게 보이는 이유 역시 레일리 산란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해가 기울면 태양 빛의 이동 경로가 길어지는데, 파란빛은 오는 도중에 흩어지고 긴 파장의 붉은빛만 남아 우리 눈에 도달한다. 그래서 우리 눈에 하늘이 붉게 보이는 것이다.

푸른 하늘에 솜처럼 놓여 있는 구름은 왜 하얗게 보일까? 이 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한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는 구스타프 미(Gustav Mie)다. 구름은 대기 중의 수분이 뭉쳐져 만들어진다. 수분은 빛의 파장보다 입자가 크기 때문에 빛의 모든 파장을 산란시킨다. 이를 미 산란(Mie scattering)이라고 부른다. 빛이 공기의 작은 입자와 부딪치면 파장에 따라 산란 강도가 다르게 나타나지만, 빛이 구름의 물방울과 부딪치면 파장과 관계없이 빛의 모든 색이 고르게 산란된다. 그래서 구름이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모든 물감이 섞이면 검은색으로 변하지만, 빛이 섞이면 흰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구름이 왜 하얗게 보이고 하늘이 왜 푸른지, 대학원 전기자기학 학기 말 시험에 출제되어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 하늘을 보고 하늘이 파란 이유를 시험지 한 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물리학이 참 멋진 학문이구나’ 하는 생각에 빠졌더랬다.

우주정거장에서 암흑 속 우주에서 파랗게 살아 있는 지구를 바라보면 경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지상에서 바라보는 푸른 하늘도 이렇게 멋진데, 지구를 떠나 우주정거장에서 파랗게 숨 쉬고 있는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까?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우주를 생각하게 하는 가을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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