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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1000만 관중 시대...야구의 경제학 [스페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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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프로야구의 기세가 심상찮다. 관중, 시청자 모두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며 질주 중이다. 9월 15일 KBO리그에 누적 관중 1002만758명이 입장, 사상 첫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관중뿐 아니다. TV로 야구를 지켜본 시청자 수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상파 3사 TV와 OTT 서비스 ‘티빙’의 통합 시청자 수는 2억5000만명에 달한다.

프로야구 인기가 폭발하면서 미치는 경제적 파급력도 상당하다. 10개 구단 모두 흑자를 기록했고, 온라인 야구 중계를 담당하는 티빙도 흑자로 전환했다. 야구장에 입점한 매장들은 일제히 매출이 올랐고, 야구장 근처 상권은 모두 활황을 띤다. 프로야구를 활용한 마케팅도 쏟아진다. 유통, 통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야구단과 협업한 상품을 내놓는다.

매경이코노미

지난 3월 2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정규시즌 개막전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야구 팬들이 응원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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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1000만 돌파 원동력은

명문구단·유튜브 공략·가성비

사실, 올해 프로야구가 폭발적으로 높은 인기를 거둘 것이라 전망하는 이는 적었다. WBC와 도쿄올림픽 등 국제대회서 국가대표팀이 연이어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고, 시즌 시작 전부터 몇몇 선수들의 일탈이 뉴스를 탔다. 또 온라인 중계권을 네이버·카카오 컨소시엄에서 티빙으로 넘기면서 무료 중계서 ‘유료 중계’로 바뀌었다. 설상가상으로 초창기 티빙의 미숙한 중계로 방송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팬들로부터 강한 반발이 일었다.

악재만 가득한 환경을 극복하고 야구 인기가 치솟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4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전국구 인기를 자랑하는 지방 야구단의 선전이다. 프로야구 흥행은 흔히 ‘기롯삼한’이라 불리는 지방 4팀, KIA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삼성 라이온즈·한화 이글스의 성적과 직결된다. 지방 구단들은 오랫동안 한 지역에 자리 잡은 덕분에 팬 지지층이 두텁다. 한국갤럽이 매년 조사하는 ‘프로야구 팬 조사’ 결과를 보면 지방 4개 구단은 항상 인기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KIA, 롯데, 삼성, 한화 순서가 공고하다. 역대 프로야구 최고 시청률 경기는 모두 유일한 호남 팀 KIA 타이거즈의 경기다.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 자이언츠는 연간 최다 관중 기록을 보유한 구단이다. 삼성과 한화는 각각 대구·경북, 충청권 출신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인기는 곧 관중 동원력으로 직결된다. 지방 팀 성적이 좋으면 수도권 원정 경기장 절반 가까이 채워지고, 지방 홈구장은 매진된다. LG와 두산, SSG 등 수도권 인기 구단은 홈구장은 많이 채우지만, 지방 구장을 채울 정도로 원정 팬을 많이 동원하지는 못한다.

올해는 유독 지방 구단 선전이 돋보였다. 최고 인기 팀 KIA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인기 팀 삼성 라이온즈가 2위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와 한화는 비록 가을야구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시즌 막바지까지 5강 경쟁을 이어가며 선전했다. 이는 곧 관중 수 증가로 이어졌다. KIA와 롯데, 삼성은 100만명이 넘는 관중을 동원했다. KIA 타이거즈는 2017년 이후 7년 만이며, 삼성은 구단 역사상 최초다. 한화 이글스는 역대 최다 홈구장 매진 행진을 기록, 평균 94%가 넘는 좌석 점유율을 자랑했다. KIA 타이거즈 관계자는 “주말, 공휴일 제외하고 순수 평일 경기(화·수·목)가 매진이 되는 게 올해 프로야구 인기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시라 생각한다. 고속철도나 고속버스 등을 이용해 광주를 방문하는 타 지역 팬도 많고, 광주를 방문하는 원정 팀 팬도 많아진 게 느껴진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둘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 제한 해제다. 그동안 프로야구 콘텐츠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지 못했다. 경기 영상, 영상을 활용한 2차 창작 등을 기존 온라인 중계권 사업자가 막은 탓이다. 초창기부터 프로야구 온라인 중계를 도맡았던 네이버·카카오 컨소시엄은 중계를 무료로 푸는 대신 야구 팬, 구단, 방송사의 경기 영상 활용을 자사 포털로 한정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공유를 금지했다. SNS 활용 금지 정책은 젊은 관중의 유입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상황은 올해부터 티빙이 온라인 중계권을 가져가면서 바뀌었다. 티빙 측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2차 창작을 막지 않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40초 미만 경기 영상을 소셜미디어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 방침을 밝혔다. KBO는 티빙 손을 잡았고, 올해부터 유튜브와 SNS에 KBO 경기 영상이 풀리기 시작했다. 효과는 상당했다. SNS와 유튜브 등 온라인상에서 프로야구는 뜨거운 인기를 자랑했다. KBO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지난해 12월 기준 23만6000여명에서 올해 9월에는 39만명으로 65% 상승했다. KBO 유튜브 구독자는 지난해 12월 9만8000명에서 올해 8월 기준 22만6000명으로 131% 증가했다.

단순히 이용자만 늘지 않았다. 치어리더의 응원 모습, 야구 경기 하이라이트 등이 숏폼으로 퍼지면서 ‘밈’으로 퍼져 나가면서 야구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례로 이주은 KIA 타이거즈 치어리더의 일명 ‘삐끼삐끼 춤’ 영상은 조회 수가 8000만회를 넘어섰다. 삐끼삐끼 춤이란 상대 팀 타자들이 삼진으로 아웃 될 때마다 KIA 타이거즈 응원단에서 가벼운 응원을 유도하면서 추는 춤이다. 숏폼 영상이 한국은 물론 해외에 퍼져 나가면서 뉴욕타임스에 소개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셋째, 프로야구단의 적극적인 마케팅 정책이다. 과거 프로야구는 수익보다는 성적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유니폼, 각종 굿즈 등은 부차적인 사업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관객 유입과 함께 구단들은 전향적으로 태도를 바꿨다. 마케팅에 전력을 기울이며 팬심 모시기에 나선다. 대표적인 정책이 협업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짱구는 못말려’ ‘에스더버니’와 함께한 여러 굿즈를 선보였다. 두산 베어스는 인기 캐릭터인 ‘망그러진곰’과 협업을 진행, 호평을 받았다. LG 트윈스는 네이버 웹툰 캐릭터인 ‘마루는 강쥐’ 시리즈 유니폼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신선한 마케팅은 야구에 생소한 ‘젊은 여성’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KBO 조사에 따르면 2024년 처음 야구장을 찾은 사람 가운데 여성 비율은 48.6%에 달한다. 새롭게 야구장에 유입된 여성 관람자 가운데 31.4%가 20대고, 미혼 비율은 53.2%였다. 아재가 좋아하는 스포츠에서, MZ세대가 좋아하는 스포츠로 완벽히 탈바꿈했다.

넷째, 다른 문화 활동보다 싼 ‘가성비’다. 물가 상승으로 영화관, 뮤지컬, 콘서트 등 다른 여가 활동은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지만, 야구장은 가격 상승세가 덜하다. 현재 국내 야구장의 평균 객단가(관중 1인당 1경기당 평균 사용액)는 1만5226원이다. 영화 티켓 평균 가격과 비슷하고, 공연장 평균 가격보다 절반이나 싸다. 1만5000원만 내면, 3시간 동안 먹고 마시며 응원을 즐길 수 있다. ‘2024 KBO 관람객 증가 요인 파악을 위한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야구장 방문 이후 야구 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43.2%가 응원 문화를 꼽았다. 다음으로 경기 자체(21.4%), 식음문화(15%) 순으로 나타났다. 싼 가격에 즐길 거리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어 관객이 몰린다는 분석이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8호 (2024.10.02~2024.10.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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