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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이슈 애니메이션 월드

버추얼 가수도 군대 가고 연애한다?... 성공 키워드는 결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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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가상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가 6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팬콘서트 '헬로, 아스테룸! 앙코르!'를 하고 있다. 블래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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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들의 환호 속에 등장한 건 3차원의 사람이 아닌 스크린 위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었다. 외형은 2차원 그림이지만 노래하고 춤을 추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여타 아이돌 그룹의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크린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동의 제약이 있긴 하지만, 돌출 무대를 사용하기도 하고 비눗방울과 화염 등을 활용해 2D 캐릭터에 현실감을 부여하며 관객과 거리를 좁혔다.

이들은 지난해 3월 데뷔한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 올 4월 첫 단독 콘서트를 한 후 이번이 두 번째인데 '헬로, 아스테룸! 앙코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달 5, 6일 2회 공연 티켓은 예매 10분 만에 매진됐다. 대형 기획사도 아니고 가요계에서 잔뼈가 굵은 중소 기획사도 아닌 시각특수효과(VFX) 기술 기반의 신생 회사가 제작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돌풍은 K팝 시장에 적잖은 자극을 주고 있다.

SM·하이브는 '본체' 없는 버추얼 가수 제작


플레이브의 성공과 함께 대형 K팝 회사들도 버추얼 가수 시장에 하나둘 뛰어들고 있다. 하이브의 인공지능(AI) 오디오 기술 자회사 수퍼톤은 지난 6월 4인조 구성의 가상 걸그룹 신디에잇(SYNDI8)을 내놨고, SM엔터테는인먼트는 자사 대표 걸그룹인 에스파의 세계관 속 조력자 캐릭터였던 나이비스의 데뷔 곡을 지난달 10일 공개했다. 아직 데뷔 초긴 하지만 반응은 크지 않다. 신디에잇의 신곡 영상은 유튜브 조회 수가 1만 회에도 못 미친다. 나이비스는 에스파를 활용해 마케팅을 펼쳤는데도 데뷔곡 ‘던’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한 달간 177만 회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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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의 버추얼 가수 나이비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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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차이는 '사람'이다. 플레이브 뒤엔 '본체'라 불리는 실제 가수들이 있지만, 신디에잇과 나이비스는 대부분 AI로 만든 디지털 데이터로 움직인다. 본체가 없을 경우 연습생 훈련이나 멤버 유지에 따른 비용도, 사생활 문제로 인한 리스크도 없어 관리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팬덤 규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다. 가수와 팬 사이를 연결하는 본체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플레이브 소속사인 블래스트 관계자는 "캐릭터는 가상 공간에 있지만 캐릭터와 1대 1로 대응하는 아티스트, 그 아티스트의 말과 행동은 모두 실제여야 많은 감동을 주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플레이브가 단기간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가상 캐릭터로 환상을 심어 주는 한편 본체의 실제 성격과 개성, 재능을 보여주며 친밀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데뷔 후 매주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팬들과 소통했고 버추얼 가수라는 이유로 곡 수급이 난항을 겪자 멤버들이 직접 곡을 쓰고 안무를 만들어 앨범을 냈다.

버추얼 가수 성공 요인도 '사람', 위험 요인도 '사람'


플레이브는 얼굴을 숨긴 채 가상 캐릭터를 내세우곤 있으나 팬들은 물론 일반 K팝 소비자들에게도 본체의 정체가 꽤 알려져 있다. 오히려 팬들이 실제 멤버들의 신상 보호에 앞장서는 상황이다. 30대 팬인 회사원 김하늬씨는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지만 노래가 좋아 관심이 생겼고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멤버들의 입담과 성격, 케미스트리가 좋아 팬이 됐다"면서 "본체가 누군지는 쉽게 알 수 있지만 환상이 깨질 것 같아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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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아이돌 그룹 신디에잇. 수퍼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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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캐릭터 뒤에 존재하는 사람은 팬덤을 확장할 수 있는 핵심 요소지만, 반대로 정체성을 해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플레이브의 소속사가 멤버들 신상 공개에 대한 소극적 대처로 팬덤의 불만을 사고 있는 상황이 이를 대변해 준다. 사생활 문제 등으로 인한 리스크도 피할 수 없다. 플레이브 멤버 중엔 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은 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다른 보이그룹처럼 '군백기'를 겪을 수도 있다. 인간적 매력으로 가상 캐릭터의 한계를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본체를 스크린 뒤에 숨긴 채 가상 세계를 고수하다 보면 소통의 방식, 콘텐츠의 다양성, 아티스트로서 성장 서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K팝 기획사 임원은 "K팝 아티스트의 성공에 있어서 인간적 매력과 외적인 매력, 팬들과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한데 버추얼 가수에 본체가 있더라도 계속 새로운 콘텐츠로 서사를 확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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