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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중앙시평] 부끄러움을 모르는 권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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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폄하하지만, 우리의 1970년대는 대단한 시절이었다. 한편으로는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성장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재와 장기 집권이 있었다. 빛과 어둠의 저변에서 사회를 지탱한 놀라운 힘은 공직에 있는 자들의 엄격한 명예규율(honor code)이었다. 꼭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더라도 말직에 있는 자들도 공직자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규율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공직자의 가족은 가정사를 희생하더라도 공직의 의무를 먼저 다하도록 배려했고, 공직자인 가족 구성원의 공적 업무의 영역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멋모르고 공직자인 아비의 위세를 친구들에게 자랑한 초등학생 어린 자식을 그 어미가 울면서 종아리를 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은 공직이 가진 명예의 원천이었다.



눈부셨던 1970년대의 경제성장

그 뒤엔 엄격한 공직자 명예규율

권력자 가족 문제로 리더십 위기

과거 볼 수 없었던 초현실적 장면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권력이 집중되고 투명성이 낮았던 권위주의 시대의 특성상 권력자의 가족들이 아첨과 뇌물을 받고 특혜를 누렸던 사실들을 잊었느냐고. 맞다. 그런 개인적인 일탈들이 있었지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자기 규율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비리가 밝혀진 권력자와 그 가족들은 결국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처벌받고, 심지어 목숨을 끊기도 했다. 최소한 부끄러움을 알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당시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한국 경제기획원과 일본 대장성의 관료들을 놓고 서양의 학자들은 최고 수준의 유능함과 공적인 헌신이 어떻게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느냐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50년이 지난 지금 공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자세는 초현실적이다. 대선 때부터 내내 문제가 되어왔던 배우자의 처신을 둘러싼 대통령의 태도는 한마디로 그 얘기는 꺼내지 말라는 것이다. 점점 문제가 커지다 못해 여당에서도 기소 의견이 나오고 보수 지지층의 여론도 크게 돌아서고 있는데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의 억울한 사정을 따지자고 들면 악질적으로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었다고 항변할지 모르겠으나, 최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은 개인의 억울함을 앞세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따라야 할 명예규율을 따르지 않으니 정작 심각한 문제는 보수정부가 해야 할 국가적 의제를 밀고 나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반드시 꺼내야 할 국가적 의제들을 용감하게 꺼내놓은 것들이 적지 않아서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여론은 의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가족과 관련한 명예규율을 따르는지만 지켜보고 있다. 이래서는 사적인 일에 발목을 잡혀 공적인 일을 그르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 일가가 명예규율을 따르지 않는 것을 맹비난하면서 이거야말로 탄핵감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야당도 초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매우 중대한 여러 건의 범죄혐의를 받고 있고 다음 달에 그중 두 건에 대한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제1야당 대표는 자신이 받는 혐의는 모두 검찰의 조작이지만 대통령 배우자는 특검을 해야 하고 “중간에라도 끌어내리는” 것이 대의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이 사법 리스크가 현실이 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대선을 치르고 싶은 본인의 이해관계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은 그냥 우연일 뿐이다. 본인의 배우자가 경기도 법인카드를 비롯한 여러 불법적 특혜를 누렸다는 구체적 증언도 모르쇠와 버티기로 일관하면 그뿐이다.

잊혀지고 싶다면서 시시콜콜 훈수를 두던 전직 대통령은 막상 자신의 자녀가 만취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자 며칠째 꿀 먹은 벙어리다. 그의 밑에서 고위 공직을 지냈던 다른 야당의 대표는 그 자녀가 독립적인 성인이어서 전직 대통령에게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역성을 들고 나섰는데,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여러 정황 증거들은 그 자녀가 별로 독립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전 사위의 취업 특혜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청와대에 함께 살고 자동차도 두 대씩이나 물려준 자녀가 사고 쳤을 때만 독립적이라고 하면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역성을 들고나선 그 야당 대표도 가족이 연루된 불법을 저질러 2심까지 유죄를 받고도 정당을 만들고 선거에 나서 당선된 상황이다. 공적인 자리에 있는 자들이 지켜야 할 명예규율을 놓고 보면, 명예롭지 않은 자가 다른 명예롭지 않은 자를 심판하겠다고 하면서 또 다른 명예롭지 않은 자는 감싸고 도는 꼴이니 어차피 도리는 땅에 떨어졌다.

제도란 아무리 노력해서 만들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어서,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명예규율이 그 빈틈을 메우고 세상을 발전시킨다. 이제 아무도 부끄러움을 따지지 않는 초현실적 세상을 목도하며 우리가 과연 지난 50년간 나아진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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