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올해도 역성장 공포…한국에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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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이끄는 경제 대국이자 최강 제조업 국가인 독일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제조업·수출 기반의 탄탄한 경제가 디지털 경제 시대에서 힘을 잃고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있다.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0.3%)을 기록한 데 이어 독일 재무부는 올해에도 -0.2% 역성장할 것이라고 발표해 충격을 주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독일 경제의 이상 징후가 유사한 제조업·수출 기반을 가진 한국 경제에 미리 전하는 경고음이라며 신성장 동력 확충을 위한 정부의 과감한 미래 투자를 당부하고 있다.
독일 재무부는 지난 7일(현지시간) 올해 독일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3%에서 -0.2%로 하향 조정했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독일 경제는 침체됐으며 우리는 경쟁력 상실과 결합한 구조 변화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독일 경제모델은 지난 10년간 경쟁력을 잃었을 뿐, 망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올해 정부 전망치가 현실화할 경우 독일 경제는 2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로이터는 “작년 독일은 GDP가 0.3% 감소하며 유로존에서 가장 저조한 성장세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경제 대국이자 유럽 경제를 이끄는 독일의 저성장 국면은 크리스티안 린드너 장관이 언급한 ‘경제모델’의 성장 한계와 맞물려 있다. 자동차 중심의 탄탄한 제조업으로 성공한 과거 모델에 안주해 인공지능(AI) 등 신성장 동력 투자를 소홀히 했다는 게 독일 안팎의 공통된 비판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날로그 세계가 디지털화하는 급변기에서 독일이 강점을 가진 내연기관과 가전제품 산업은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에 산업 주도권을 내줬다”고 지적했다.
독일이 첨단 기술 육성에 필요한 정부 투자에 자체적으로 헌법 족쇄를 채운 것도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독일 정부도 제조업 중심 경제모델이 수명을 다할 것을 예상해 연구·개발(R&D) 지출을 늘리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06년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전략으로 ‘하이테크 전략 2025′를 발표했다. 현재 독일의 R&D 지출은 GDP의 약 3%로 유럽 평균보다 높다.
문제는 독일 정부가 2009년 경기 침체 시를 제외하고 GDP의 최대 0.35%까지만 재정적자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독일의 공공투자가 선진국 중 최하위권으로 주저앉았다는 점이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독일의 GDP 대비 공공투자 비중 2.5%인데, 이는 공공투자가 열악한 것으로 꼽히는 영국의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유로존에서도 스페인을 제외하면 유로존 주요 고소득 국가 중 가장 낮다.
그나마 마련한 R&D 예산도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 구조가 워낙 자동차 산업 중심으로 짜여 있다 보니 신규 R&D 지출이 결국 자동차 연관 업종으로 퍼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독일 민간 싱크탱크인 Ifo 산업조직 신기술센터의 올리버 팔크 소장은 “독일경제에서 자동차 산업은 일종의 운영시스템(OS)과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과거 네덜란드 대표기업인 필립스가 지배했던 네덜란드 도시 아인트호벤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과 ASML의 협력사, 그리고 혁신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변모한 것처럼 독일 경제가 아인트호벤의 변신처럼 대대적인 경제 체질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중국의 값싼 전기차에 밀려 시장에서 도태되고 있는 독일 국민기업 폭스바겐의 현실에 대해 “정밀하게 작동하는 값비싼 기계의 경이로움을 생산해온 독일의 경제 시스템이 디지털 세상에서 더 이상 그 경이로움을 재창조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사실 제조업 위주의 독일 경제 모델은 첨단 산업이 급부상하면서 한참 전에 한계에 부딪혔지만, 유로존 창설에 따라 남유럽 수출이 늘어났고 중국 수출량도 덩달아 증가해 버틴 것”이라며 “첨단 산업 분야에서 크게 뒤처지면서 결국 한계에 봉착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도 서둘러 산업 구조를 재편하지 않으면 기존 성공을 되찾는 게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지금 독일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던지는 화두”라고 지적했다.
유럽 경제에서 다른 나라보다 노동력의 평균 연령이 높고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현실도 독일 경제의 위기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의 노동인구(15~64세) 증가율이 2025년에서 2029년 사이에 0.66%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19년에서 2023년 사이의 성장률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G7 국가 중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수치다.
로버트 하벡 독일 경제부 장관은 “독일 경제의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는 노동자 부족”이라며 “이주 노동자가 없다면 독일 경제는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정부는 노동력 부족 문제를 그동안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해결해 왔지만, 최근 독일 내에서 이민자 범죄가 빈번해지면서 반이민 정서가 거세지면서 이민을 통한 노동력 수급도 한계에 부딪혔다.
최근 독일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한 한국은행 미국유럽경제팀도 독일이 부족한 노동력을 고령층과 저숙련 이민자 유입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고숙련 근로자가 부족해졌다고 진단한다.
산업 구조가 제조업에 편중되고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으며,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 독일 경제와 ‘닮은꼴’인 한국이 신성장 동력 확보의 고삐를 죄지 않으면 독일의 실수를 반복할 것이라고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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