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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北 "남쪽 국경 영구 차단"…南 패싱, 美에 핫라인으로 알린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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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전선지역에서 대전차 방벽 추정 구조물 설치 중인 북한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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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9일 군사분계선(MDL) 일대 요새화를 통한 남쪽 국경의 ‘영구적 차단·봉쇄’를 선언한 것은 표면적으로 남측을 겨냥한 단절 의지를 극대화한 것으로 읽히지만, 동시에 북한의 복합적인 속내도 반영하고 있다. 남측과의 직접 충돌을 부를 수 있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는 뒤로 미루면서 차기 미국 행정부 출범 등을 염두에 두고 대화의 여지를 남기는 듯 한 태도도 보였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이날 오전 대외 매체인 조선중앙통신 보도문 형식으로 “우리 공화국의 주권 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를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한 건 한·미를 겨냥한 대외 메시지 성격이 짙다는 방증이다. 같은 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불참한 최고인민회의 결과 보도는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 실었다.

특히 총참모부는 보도문에서 “우리 군대는 오해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미군 측에 전화 통지문을 발송했다”고 밝혔고, 이례적으로 ‘9일 9시 45분’이라는 구체적인 통보 일시까지 공개했다. 이와 관련 유엔사는 중앙일보에 "핫라인을 통해 북측 통지문을 수령했다"면서 "핫라인의 무결성을 위해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확인했다.



"제1주적" 남측 건너뛰고 美통보 후 대외 매체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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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간 소통 루트인 직통 전화기(일명 핑크폰). 연합뉴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북 간 통신선은 지난해부터 모두 끊어졌지만, 이른바 ‘핑크폰’으로 불리는 유엔사 통신선이 유일하게 물밑에서 가동되고 있었다. 북한이 굳이 이를 공개 확인한 건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한 남 측은 철저히 무시하면서 미 측에는 다른 태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박빙의 판세인 다음달 미 대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새 행정부의 대북 기조에 따라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일 수 있어서다. 김정은은 지난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 연설에서 “최근 우리 공화국 주변 정세 환경을 예리하게 주시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총참모부는 또 “전쟁 억제와 공화국의 안전 수호를 위한 자위적 조치” 등을 강조했다. 남북 단절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동시에 실제 군사적으로 방어를 위한 목적도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김정은도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 “우리는 무력 통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7일 국방대 연설)고 수차례 강조했다.



'포탄 대량 수출' 北, 민감한 NLL은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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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은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월 7일 주체적 국방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최고전당인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하고 창립 60주년을 맞는 교직원, 학생들을 축하 격려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군사초강국, 핵강국을 향한 발걸음이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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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말과는 다소 모순되는 이런 수세적 태도는 북한이 최근 122㎜ 방사포탄과 152㎜ 자주포탄 수백 만발을 러시아에 제공하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의 '대러 수출품 리스트’에 단거리 미사일과 240㎜ 장사정포 등도 담겨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모두 재래식 전면전에선 한발 한발이 아쉬운 무기들인데, 북한은 이를 생산하는 족족 아낌없이 러시아에 넘기고 있다.

이런 대량 수출 자체가 북한이 남측과의 전면전은 상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동·서로 약 238 km에 이르는 MDL의 대전차 방벽과 지뢰 매설 등은 오히려 방어 역량에 ‘구멍’이 발생했다는 초조함을 내포한 것 아니냐는 말이 군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총참모부의 보도문이 ‘한반도의 화약고’인 NLL은 그냥 둔 채 MDL에 집중하는 것도 결국 이런 처지를 반영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유엔사가 정전협정 이후 서해 5도 북단과 북한 측에서 관할하는 옹진반도 간의 중간선으로 설정한 NLL은 남북 간 실질적 해상분계선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부정해 왔고, 김정은은 지난 2월 NLL을 “유령선(線)”으로 부르며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새 해상 경계선 설정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주를 이뤘는데, 7~8일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 격)를 열고서도 이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 없이 육상에서의 요새화 등을 강조한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북한학)는 “북측이 ‘새 해상 국경선’을 마련한다면 불가피하게 기존 NLL을 침범해야 하기 때문에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한에도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방어 성격' 명분 쌓고 필요하면 대남 도발 가능



군 안팎에선 한국이 언급한 ‘북한 정권의 종말’을 북한 스스로 꺼내든 사실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앞서 김정은은 7일 “공화국 정권의 종말에 대해 천박하고 상스러운 망발”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국군의날 기념사를 겨냥했고, 이날 총참모부도 “'정권종말'을 떠드는 호전광들”이라고 비난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정부와 군을 비난하려고 북한 내에서 금기어로 통하는 ‘정권종말’을 스스로 얘기하고 있는 건 그만큼 이 단어가 북한 수뇌부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MDL 일대 ‘방어 축성물’이라며 방어적 성격을 강조한 건 향후 발생하는 긴장 고조의 책임을 모조리 한국에 돌리는 효과가 있다. 박원곤 교수는 “한·미 간 틈새를 갈라치기 하는 도발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이유”라고 우려했다.

정영교·이유정·이근평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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