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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단독] "김레아 손에 죽은 내 친구...두려워서 못 한 진술, 이제라도 용기 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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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레아 사건 그 후: 피해자 친구 증언]
피해자가 친구에게 전한 잔학한 폭력
SNS 없애고 휴대폰 부수며 연인 독점
폭행·성관계영상 유포 협박하며 잡아
"신고할 걸" "더 도와줄 걸" 뒤늦은 후회
한국일보

김레아에게 살해된 대학생 A씨의 방. 지난달 27일 경기도의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한 A씨의 어머니는 딸의 방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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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제라도 용기 내고 싶어요. 김레아는 세상에 다신 나와선 안 될 괴물이거든요."

올해 3월 발생한 경기 화성시 오피스텔 살인사건의 범인 김레아(27). 그가 살해한 22세 대학생 A씨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이 바로 친구 이슬아(가명)씨다. 슬아씨는 A가 학교에서 가장 의지하던 친구였다.

평소 A는 남자친구였던 김레아와의 일을 슬아씨에게 모두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레아의 폭행, 욕설, 성폭행, 기물 파손,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등 그 모든 범죄들을 말이다. A는 언제나 슬아씨에게 "김레아가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걸핏하면 때리고, 휴대폰을 마음대로 사용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차단하거나, 지인들과 식사 약속에도 가지 못하게 막았다. 김레아가 A의 휴대폰을 망가뜨려 친구들 연락처를 모두 잃어버렸을 때, A는 유일하게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던 친구 슬아씨에게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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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위해 나서지 못했어요"


그러나 모든 걸 알던 슬아씨의 진술은 끝내 법정에서 증거로 제출되지 못했다. "김레아가 혹여나 출소해 언젠가 날 찾아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슬아씨의 용기를 자꾸 무너뜨렸다. "친구와 연락하면 죽여버리겠다." "나 10년만 살고 나오면 된다." 친구와 언론을 통해 들었던 김레아의 말들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고, 결국 법정에 증인으로 나설 수 없었단다.

슬아씨가 수사기관에 털어놓았다가, 법정에서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 한국일보는 이슬아의 검찰 진술서를 입수했다. 검찰이 진술을 받았음에도, 슬아씨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 법정 증언을 포기하게 되면서 끝내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 기록이다. 슬아씨는 "이제라도 용기를 내고 싶다"며, 언론을 통해서라도 김레아의 만행을 낱낱이 밝히고자 본보 인터뷰에 응했다. 김레아의 1심 선고는 이달 23일이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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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진술서와 슬아씨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김레아가 A와 교제를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이다. 슬아씨는 "A가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해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며 "같은 과 남자애가 자길 좋다고 해서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 남자가 바로 김레아였다. 슬아씨는 "결국 사귀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학교에서 인기가 많던 A가 호감이 없던 김레아의 마음을 받아준 게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레아와 교제를 시작한 뒤부터 A와 슬아씨의 관계는 갑자기 소원해졌다. A는 김레아와 사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남자친구에게 집중해야 될 것 같다"며 SNS에서 슬아씨를 차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알고 보니 김레아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 A와 슬아씨가 주고받은 SNS 메시지
A: 나 남친한테 집중해야 될 거 같아서 더 이상 연락을 못 하고 차단해야 될 것 같아. 미안해. 이슬아: 네 마음 이해하니까 그게 정말 언제가 되어도 상관없으니 주저하지 말고 연락해줘. 항상 응원할게!

슬아씨는 친구가 갑자기 변한 게 너무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사랑에 눈이 돌면 그 사람만 보이는 경우가 있지 않나"라며 "처음엔 그런가 싶어 남자친구가 많이 잡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A는 슬아씨 말고 다른 지인들과도 관계를 끊었다. 어느 날 A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와 있던 사진이 갑자기 전부 내려갔는데, 이후 그 계정은 김레아와 함께 찍은 사진만 올리는 '커플 계정'으로 바뀌었다.

그걸 보니 슬아씨의 마음은 서운함에서 걱정으로 바뀌었다. 슬아씨는 "김레아가 개명을 서너 번 했다고 들었다 "자기를 드러내기 싫어서라는데, 그런 이상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A가 친구들과 만날 때 김레아는 10분이라도 연락이 안 되면 화를 내고, A에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키기도 했다"며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다 며칠 뒤.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슬아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A였다.

"나 남친에게 협박당하고 있어"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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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슬아씨와 A의 통화내용 중에서
A: 나 큰일 났어. 이슬아: 무슨 일이야, A야. 이거 무슨 번호야. A: 나 남친한테 협박받고 있어. (중략) A: 얘(김레아)가 나 12월에 미국 가는 거 알잖아. 근데 나한테 너 같은 X는 벌을 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임신시켜서 미국 못 가게 하겠다고. 이슬아: 진짜 사이코새끼 아니야? A: 나 어떡해. 임신했으면 어떡하지?

A는 "남자친구한테 협박받고 있는데 몰래 전화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김레아가 자기 멋대로 강제로 찍은 성관계 영상을 다 퍼뜨린다고 협박한다"는 얘기였다. A는 그간에 있었던 얘기를 다 털어놓았다. 김레아가 스마트폰을 부쉈고 나중에 휴대폰을 준 뒤부턴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 등을 모두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A가 승무원의 꿈을 이루려고 미국에 가려던 계획도, 김레아 때문에 좌절됐다고 했다.

화가 난 슬아씨는 A에게 "김레아의 행동은 범죄이니 당장 헤어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안전한 이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이 안전한 이별을 위해 고안한 방법은 녹취였다.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해도 증거가 필요했다. A가 김레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은 학교 강의였는데, 이때 슬아씨가 A에게 녹음기를 몰래 전달해 김레아의 협박 발언을 녹음하는 것이었다. 당시 김레아는 A가 학교에 가는 것도 막았는데, 두 사람은 적어도 시험기간엔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A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A는 "나 이제 괜찮다"며 "(방금 통화는) 내가 또 혼자 오락가락한 것"이라고 했다. A는 "오빠(김레아)한테 너랑 전화한 거 말했어"라며 "너랑 연락해도 된대"라고 했다. 슬아씨는 "먼저 연락했다간 A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우선 녹음기를 주기로 한 날 희망을 걸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속한 12월의 그날, 슬아씨는 초소형 녹음기를 사서 학교로 갔다. 하지만 강의실을 아무리 둘러봐도 A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교수님에게도 물어봤지만 "A는 결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주검으로 돌아온 친구

한국일보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레아의 1심 결심공판이 이달 23일 수원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린다. 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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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낙심했던 슬아씨에게 A의 전화가 걸려왔다. A는 "김레아와 헤어졌다"면서 "그동안 모텔에 감금돼 있었다"고 털어놨다. A는 △김레아가 자신을 때리고 목을 졸랐던 것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막고 연락하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한 일 △"요즘 청부살인 3,000만 원이면 된다"고 협박한 일들을 털어놓았다. 김레아는 A에게 "너는 사랑해주는 사람 많잖아, 나는 그렇지 않은데"라며 심리적 지배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날 밤 다시 A의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 보니 희미하게 "살려달라"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게 들렸다. A는 맞고 있었다. 슬아씨는 "목이 졸리는 소리도 들렸다"며 "김레아가 저한테 '두 사람 관계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전화한 것 같았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슬아씨는 친구가 빨리 김레아와 헤어지길 바라며 A의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3월 25일. 친구가 화성의 오피스텔에서 살해됐다는 비보를 접했다. 범인은 역시 김레아였다. 김레아가 죗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 수사기관에 진술서까지 제출했지만, 주변에선 "너도 위험하다"라며 법정 증언을 말렸다. 밥 먹듯이 "주변 지인들 죽여버리겠다"고 A를 협박했던 김레아의 위협이 함께 떠올랐다.
"그때 신고할까 엄청나게 고민했지만, 친구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신고할 수 없었어요. 김레아를 자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하지 못했습니다."
(이슬아의 검찰 진술서 중에서)


슬아씨는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신고했더라면, 친구를 좀 더 세게 말렸더라면. 그는 "친구를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친구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한, 잔학하고 비열했던 김레아의 교제 폭력은 당사자 아닌 슬아씨조차 오금을 펴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공포감을 유발했던 것이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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