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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대한민국의 두 국부, 김구와 이승만[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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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격 사유에도 미국 국부가 된 워싱턴
이승만과 김구, 워싱턴 넘어서는 장점
각각 과오 넘기고 이젠 국부로 모셔야
한국일보

지난 3월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9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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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의 독립전쟁 때 총사령관으로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조지 워싱턴은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중에서 1787년 초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워싱턴은 4년 중임 후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나 아니어도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훌륭한 분이 많이 있다.” 미국식 대통령제의 초석을 놓은 워싱턴은 대통령제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 ‘건국의 아버지들’이 차례로 대통령이 됐다. 이후 150년간 대통령 중임제는 관습헌법으로 정립되었다. 그런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4선(1932-1943)에 이르자 이후 수정헌법에 중임제를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1945년 광복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이르는 과정에서 건국의 아버지라고 할 만큼 존경받는 애국지사가 많다. 김구, 이승만, 김규식, 여운형, 송진우 등등. 미국과 달리 그분들이 차례로 대통령을 맡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끝까지 소명을 다한 김구는 광복 후 열렬한 환영 속에 환국하였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미국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 좌우 이념 대립으로 정치적 혼돈상태가 지속되었다. 38선 이북을 점령한 소련 군정의 인민민주주의와 이남을 차지한 미 군정의 자유민주주의 사이에 야기된 갈등은 분단국가로 이어졌다. 한민족 통일국가를 우선시하던 민족주의자 김구의 이상과 우선 남쪽만의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 이승만의 현실론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작금의 역사 논쟁도 그 뿌리는 진보의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김구론와 보수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론으로부터 비롯된다.

시대정신은 이제 김구와 이승만의 대통합을 요구한다. 김구의 이상은 현실에서 구현되지 못하였지만, 통일을 향한 열정은 한민족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분단 속에 탄생하였지만 자유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킴으로서 오늘날 세계사적으로 위대한 대한민국을 구현하는 데 이승만은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워싱턴도 완전무결한 위인은 아니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군 장교로 복무했다. 거대 농장주로 수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친구 아내와 불륜까지 저질렀다. 그럼에도 워싱턴이 미국의 국부라는 데 이의가 없다. 미국 1달러와 25센트에 워싱턴이 새겨져 있다. 수도는 워싱턴DC, 서부에 워싱턴주가 있다. 미국 전역에 워싱턴 대학도 20여 개에 이른다. 2월에는 워싱턴과 링컨 생일에 맞춰 ‘대통령의 날’도 제정됐다.

이제 철 지난 건국절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발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이승만을 친일파로 폄하하지 말자. 해방공간에서 남북협상에 실패한 김구와 장기집권으로 헌정사를 파탄에 이르게 한 이승만의 과오도 역사의 장으로 넘기자. 적어도 김구와 이승만은 일제강점기에 워싱턴처럼 정복군의 일원으로 복무하지는 않았다. 두 분 다 워싱턴에 못지않은 장점을 가진 국가지도자이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오롯이 애국애족 일념으로 광복을 위해 헌신한 두 분을 대한민국의 국부(國父)로 모셔야 한다. 우리 화폐는 모두 조선조 선현들인 이순신·이황·이이·세종대왕·신사임당이 장식하고 있다. 언젠가 새로 발행될 대한민국 10만 원권에 현대사의 위대한 두 지도자 김구와 이승만을 나란히 모시자.
한국일보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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