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우방궈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함께 간담회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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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 출신인 우 전 위원장은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 시절(2003~2013년) 권력 서열 2위인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지냈다. 1941년 중국 안후이성에서 태어나 칭화대 무선전자학과를 졸업한 우 전 위원장은 상하이 전자관3공장 기술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상하이의 전자업체에서 근무하다가 83년 상하이시위원회 상무위원과 부서기를 지내는 등 줄곧 상하이를 기반으로 삼았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이끈 '상하이방'의 대표 인물로도 꼽힌다.
장 전 주석의 발탁으로 94년 중앙서기처 서기에 올랐고, 이듬해 국무원 부총리로 승진했다. 이 시기 그는 중국 국유기업의 개혁 작업과 싼샤댐 등 인프라 건설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중국 내에서 받고 있다.
후진타오 정권 출범과 함께 최고지도부에 입성한 그는 한반도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특히 6자회담 창설 시기에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북한의 회담 참여를 끌어내기도 했다. 우 전 위원장은 2003년 첫 6자회담 이후 북한이 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려 하자 그해 9월 서울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뒤 곧바로 10월에 평양을 찾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한 끝에 북한은 이듬해 제2차 6자회담에 참여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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