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틱톡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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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meme)의 나라, 미국.
우리나라도 풍자와 해학으로는 뒤지지 않지만, 미국에서 밈의 위상은 사뭇 다릅니다. 네티즌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건데요. 밈은 암호화폐 시장 한 편을 차지하고 있고,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밈을 위해 수백억 달러를 지출합니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서도 밈은 지지층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됩니다.
밈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제안한 개념인데요. '모방 등을 통해 전해지는 문화 요소'를 뜻합니다. 이 개념이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다양하게, 또 활발히 복제되면서 유행하는 패러디물 등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됐죠. 특정 사진이나 영상이 될 수도 있고요. 행동이나 현상, 분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밈은 젊은 세대가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그렇기에 빠른 속도로 광범위한 이들에게 확산한다는 특징이 있죠. 알고리즘만 탄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유행하는 밈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최근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덮은 밈 하나가 있습니다. '디디 게이트' 관련 밈인데요. '라쿤 페드로', '조쉬 허처슨' 등 우리에게도 익숙하고 단순한 밈들과는 달리 충격적인 실체가 숨어있습니다.
래버 숀 디디 콤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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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게이트는 래퍼 션 디디 콤스(55)의 범죄 행각을 일컫습니다. 콤스는 국내에선 '퍼프 대디'로 잘 알려진 힙합계 거물인데요. 다수의 힙합, R&B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레코드사 배드 보이 레코즈를 설립해 노토리어스 B.I.G(이하 비기), 어셔, 저스틴 비버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성공을 이끌었습니다. 사업 감각도 뛰어나 의류, 보드카 브랜드를 론칭해 큰돈을 거머쥐었죠.
그의 이름이 생소한 이들도 '아 윌 비 미싱 유'(I'll Be Missing You)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1997년 발매한 곡인데요. 당시 미국 힙합계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 동서부를 대표하는 라이벌 힙합 뮤지션으로 디스전을 치열하게 주고받던 투팍, 비기가 불과 6개월 사이 괴한들의 총격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거든요. 당시 콤스는 소속 가수 비기를 추모하기 위해 '아 윌 비 미싱 유'를 발매했고,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800만 장이 팔려나갔습니다.
의문의 습격으로 세상을 떠난 동료를 추모한다는 서정적인(?) 내용 뒤에는 음모론이 있었습니다. 비기가 사망하기 전 먼저 숨진 투팍이 '청부 살해'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이를 사주한 게 콤스라는 겁니다.
다만 투팍과 비기는 물론, 이들에게 총을 쏜 용의자들도 사망하면서 해당 사건의 조사는 끝까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콤스의 청부 살해 혐의도 사실이 가려지지 않은 채 음모론 수준에 머물렀죠.
그런데 최근 투팍의 사망 배경이 베일을 벗는 모양샙니다. 지난해 9월 라스베이거스 경찰은 투팍의 살인 용의자로 전 갱단 두목인 데이비스를 체포, 흉기 살인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그는 2017년 다큐멘터리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콤스가 투팍을 살해하라며 100만 달러 보상을 제안했다고 주장한 바 있죠.
올해 7월에는 데이비스의 관련 법원 문서에서 콤스가 77번이나 언급된 사실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180쪽에 달하는 해당 문서에는 데이비스가 2009년 경찰과 인터뷰한 녹취록도 포함됐는데요. 이때 데이비스는 당시 콤스가 투팍의 소속사 사장이었던 나이트와의 계약 불화 때문에 총격전 비용을 지불하고 나섰다고 주장했죠. 다만 문서에서 데이비스는 관련 증거는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청부 살해 혐의는 재판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려질 예정입니다.
사실 현지에서는 콤스의 청부 살해 혐의보다 다른 사건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콤스는 마약 투약 의혹과 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도 피소됐는데요. 과거 연인이었던 배우 캐시 벤트라도 그가 자신에게 약물을 투여하고, 다른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도록 강요한 뒤 이를 영상에 담기도 했다고 주장했죠. 콤스 측은 벤트라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고 반박했지만, 피소 다음 날 벤트라 측과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5월 CNN 단독 보도로 콤스가 로스앤젤레스(LA)의 한 호텔 복도에서 벤트라를 폭행하는 장면이 공개됐는데요. 콤스는 남성 성폭행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미국 국토안보부(HSI), 연방수사국(FBI)은 3월 장갑차와 무장 병력을 동원해 콤스의 자택을 압수 수색했습니다. △불법 무기 소지 △미성년자 성매매 △감금 △마약 거래 및 투여 △성폭행 등 다수 혐의를 입증할 증거들을 찾고자 한 것으로 알려졌죠. 콤스의 자택 2곳에선 증거물이 담긴 가방 등이 옮겨졌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들이 체포됐습니다.
결국 콤스는 지난달 성매매, 강제노동, 성 착취 목적 인신매매 등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긴급 체포된 그는 뉴욕 브루클린 메트로폴리탄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데요. 휴스턴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토니 버즈비는 1일(이하 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콤스를 상대로 규제 약물 이용 등 성폭력, 감금, 성매매 강요, 미성년자 성적 학대 등 피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다음 달 중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25년간 그에게 피해를 당했다며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피해자는 남성 60명, 여성 60명 등 120명에 달한다고 하죠.
더 큰 문제는 이들 중 다수가 피해 당시 미성년자였다는 사실입니다. 한 피해자는 자신이 성적 학대를 당했을 당시 9세였다고 진술해 충격을 안겼죠. 버즈비 변호사는 "이들이 주로 1991년부터 올해까지 뉴욕, 캘리포니아 등에서 열린 파티에서 피해를 당했다"고 부연했습니다.
변호사 토니 버즈비가 1일(현지시간) 숀 디디 콤스 상대 소송 계획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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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수사당국은 콤스의 '파티'도 살피고 있습니다. 콤스는 1990년대부터 연례행사로 '화이트 파티'를 열었는데요. 이 파티에는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운동선수, 사업가와 정치권 인사 등 셀럽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죠. 이름에 걸맞게 참석자들은 모두 올 화이트 패션을 입어야 했습니다.
수사당국은 이 파티의 뒤풀이 자리에서 범죄 행각이 벌어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프레크 오프'(Freak Offs)라고 불리는 이 자리는 화이트 파티에 비해서도 참석자가 적고 보안이 엄격한 자리였는데요. 이때 미성년자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성적 착취를 당했다는 주장이 나온 겁니다. 콤스 자택에서 수사당국이 확보한 마약, 1000병의 베이비 오일, 권총, 탄약 등이 이 자리에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심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죠.
이에 세간의 관심은 파티 참석자들로 향했습니다. 콤스와 절친한 배우 애쉬튼 커쳐부터 비욘세·제이지 부부, 나오미 캠벨, 예(칸예), 머라이어 캐리, 세라 제시카 파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페즈, 카다시안 자매 등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은 모두 이 파티에 참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디디 게이트 논란이 확산하면서, 이른바 '디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셀럽들은 일제히 침묵하거나 콤스와의 '손절'을 택하고 있습니다. 예는 2022년 콤스와 공개적인 설전을 벌이면서 일찌감치 손절을 알린 바 있고요. 2019년 콤스의 50번째 생일 파티에서 콤스 옆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 디카프리오 측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콤스와 교류가 없었다"면서 "2000년대 초반 화이트 파티에 몇 차례 참석하긴 했으나, 그저 저택에서 열리는 하우스 파티였다"고 선을 그었죠.
어셔는 콤스가 체포된 후 돌연 X(옛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는데요. 이에 대해 어셔는 "계정이 해킹됐다"고 해명했지만, 콤스의 혐의와 관련해서 별다른 언급을 하진 않았습니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도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16세였던 비버와 40세였던 콤스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담긴 과거 영상뿐 아니라 4년 전 비버의 인터뷰 영상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4년 전 비버는 애플 뮤직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나이에 데뷔해 정신 건강 문제와 싸워왔다고 고백했는데요. 그는 핫한 신인 가수였던 빌리 아일리시를 언급하며 "나는 그를 보호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겪은 일을 겪길 바라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혔죠.
평소 남편 제이지와 함께 콤스와 '트리오' 급으로 절친했던 비욘세는 최근 인스타그램 팔로워 400만 명이 줄어들었습니다. 댓글 창에는 악플이 쏟아지고 있지만,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죠.
비욘세가 지난해 2월 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5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악 앨범상을 받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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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파도 끝이 없는 디디 게이트. 일단 콤스는 연방 검찰에 체포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고, 콤스 측 변호사는 증거를 토대로 결백을 입증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버즈비 변호사가 "콤스의 체포 이후 잠재적 피해자를 추가 모집하자 3000명 이상이 연락해왔다"며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례들을 모아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논란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마약부터 성범죄 혐의까지 충격적인 소식들이지만, 현지에서는 이제 디디 게이트를 하나의 밈으로 소비하고도 있습니다.
우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 숏폼 영상에서는 베이비 오일을 잡으면 등 뒤에서 콤스가 나타나는 카메라 필터가 유행 중인데요. '등 뒤의 디디'(Diddy Behind You)는 이름의 이 필터로 만들어진 틱톡 영상만 8만 개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디디 게이트 이후 일상용품이던 베이비 오일이 이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취지죠.
콤스와 관련해 침묵을 택한 비욘세와 관련해서도 밈이 돌고 있습니다. 콤스가 소속 가수 비기의 라이벌이던 투팍을 청부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만큼, 절친한 비욘세의 성공을 위해 방해 요소를 모두 제거해 온 것 아니냐는 음모론에서 비롯된 밈인데요. 네티즌들은 2001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알리야, 교통사고로 숨진 여성 트리오 TLC 멤버 리사 로페즈 등을 거론하고 있죠.
또 2017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비욘세를 제치고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부문 트로피를 싹쓸이한 아델의 수상 소감도 다시금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아델은 비욘세를 향해 거듭 존경심을 거듭 표했고, 비욘세도 훈훈하게 화답했는데요. 두 여성 아티스트 사이 뭉클한 우정으로 화제를 빚은 이 장면은 최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지금까지 벌어진 각종 사건 사고의 범인(?)이 비욘세라고도 비난하고 있는데요. 비욘세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타이태닉 침몰 사건(1912),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1963) 등에도 그의 사진을 합성해 넣는 중입니다. 콤스의 혐의로부터 시작된 비판이 어느새 비욘세에 대한 밈으로 발전한 겁니다.
이 같은 밈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범죄 혐의에 대한 희화화가 무분별해지면서 본질을 축소하며 피해자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거죠. 파편화된 밈 자체만 소비하는 네티즌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려는 깊어집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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