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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딥페이크와 남성의 성욕이라는 신화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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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이 한창이던 1937년 7월 일본 파견군 참모장 오카무라 야스지 중장은 각 부대에 이런 내용의 통첩을 보낸다. “정보에 의하면 피점령지에서 강렬한 반일의식을 격화시키는 원인은 각지에서 일본 군인의 강간사건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군인 개인의 강간행위를 엄중 통제함과 동시에 속히 성적 위안의 설비를 갖추도록 하라.” 이후 일본군에는 위안부가 창설돼 약 20만명의 여성이 ‘점령지 여성 보호’를 위해 동원된다. 일본군 위안부란 아이디어는 병사들의 ‘종족보존 본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경향신문

진보당이 8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경찰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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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여군 하사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전국의 지휘관들이 외박을 못 나가 섹스를 못 해서 여군 성폭행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를 “하사 아가씨”라고 불렀다. 2018년 3월 같은 당 차명진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미투 운동과 관련 “수컷이 많은 씨를 심으려 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말했다. 다른 패널들이 비난하자 “진화론에 의해 입증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올해 4월 국회의원 당선자 천하람은 일본의 에이브이(AV) 배우들이 출연하는 성인 페스티벌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남성의 본능을 악마화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들이 공통으로 빠져 있는 것은 현상과 당위를 혼동한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남성의 성욕은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만 이해되며 이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무용하거나 불순한 것이 된다.

지난 8월 대규모 딥페이크 합성 음란물 범죄가 드러나자 서울경찰청은 피해 예방수칙 1번으로 여학생들이 사진 등의 개인정보를 온라인상에 올리지 말 것을 권유했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들만 강당에 모은 뒤 ‘조심’할 것을 교육했다. 같은 시간 남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딥페이크 범죄의 양상이 드러나자마자 내려진 조치가 여성의 몸을 숨기려는 시도들이라는 것은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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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의 발생에서 남성의 성욕이 어찌할 수 없는 상수라면 통제해야 할 대상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몸이 된다. 성범죄를 잘 관리하려면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활용(성범죄·공창·성인 페스티벌)하거나 숨겨야(미니스커트를 입지 마라, 소셜미디어에서 사진을 내려라) 한다. 우리는 폭행범·살인범에게 ‘진화를 통해 발달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공격 본능이 발현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밍 된 본능이 아닌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믿는 것이 문명사회의 약속이다. 그러나 남성의 성욕이라는 신화는 유독 우리 사회에서 초문명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시선에서 본다면 성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그저 자연질서의 희생양이 된다. 토마스 헉슬리는 “자연에는 도덕적 목적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남성의 성욕이 얼마나 강력하고 자연스러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우리가 만들어야 할 도덕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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