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장 이례적 사과 메시지
‘반도체 위기론’ 극복 특단의 조치
전영현 부회장 “모든 책임 경영진”
연말 인사 시즌 대대적 쇄신 전망
5세대 HBM3E 지연 첫 공식화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
삼성전자가 3분기 시장의 예상보다 낮은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삼성전자 경영진이 사상 처음으로 실적 부진에 대한 ‘반성문’을 내놨다. 반도체 부문 수장인 전영현 부회장이 삼성전자 고객과 투자자를 향해 이례적으로 사과 메시지를 발표하고, 쇄신에 대한 각오를 다진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를 둘러싼 ‘반도체 위기론’을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풀이된다.
전 부회장은 8일 “삼성전자 경영진은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 올린다”며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고, 많은 분들께서 삼성의 위기를 말씀하시는데 이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경영진)에게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수뇌부가 실적 발표와 관련해 별도 메시지를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면서 “삼성은 늘 위기를 기회로 만든 도전과 혁신, 그리고 극복의 역사를 갖고 있다”며 “지금 저희가 처한 엄중한 상황도 꼭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는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보다 철저한 미래준비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의 혁신을 제시했다.
전 부회장은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이자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라며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의 전통인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를 재건하겠다”며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해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자들과 기회가 될 때마다 활발하게 소통해 나가겠다고도 언급했다.
이날 전 부회장 발표는 삼성 위기론의 발원지가 반도체라는 점에서 반도체 수장으로서 위기극복의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점에서 사과의 주체에서 대표이사인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이 빠진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이번 3분기 잠정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반도체 부문의 대대적인 쇄신과 혁신이 뒤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12월 초에 예정된 정기 인사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5월 DS부문장 전격 교체 후 첫 정기 인사인 만큼,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등 각 사업부장의 교체 여부가 관건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영현 부회장이 메모리를 중심으로 한 경쟁력 강화로 방향을 잡은 만큼, 자신의 메시지에 부합하는 인재들로 라인업을 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연결기준 올해 3분기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의 잠정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컨센서스에는 미치지 못한 실적이다. 앞서 증권사 18곳은 삼성전자가 매출 80조7849억원, 영업이익 10조3570억원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
반도체 사업을 맡고 있는 DS부문의 실적 부진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일회성 성과급 비용이 반영된 것에 더해 스마트폰과 PC 등 IT기기 수요 부진으로 범용 D램 시장이 주춤한 것이 영향을 끼쳤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의 9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17.07%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4월(-19.89%) 이후 최대 낙폭이다.
AI 시장 확대의 최대 수혜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대량 생산이 예상보다 늦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는 이날 실적발표와 함께 “HBM3E의 경우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향 사업화가 지연됐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에 아직 5세대 HBM3E 제품을 공급하지 못했다는 점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셈이다.
파운드리 사업의 지속적인 부진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수조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 TSMC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50%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졌고,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수율 개선에 난항을 겪으면서 새로운 고객사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에 대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분사에는 관심이 없다”고 직접 언급하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전날 로이터에 따르면, 이 회장은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 참석해 “우리는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을 갈망(hungry)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회장이 파운드리 사업 분사에 대해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2019년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며 2030년까지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만 133조원을 투자해 1위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 회장의 발언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의 위기에도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2026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김민지 기자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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