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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젓가락만 빨지 말고 고기 좀 뒤집어" 이런 행위가 내 삶에 부여하는 의미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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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오피스] 상사의 한마디에 '억지 미소'…우리 곁의 돌봄 노동들 (글 : 권남표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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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말을 한 안도현 시인은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며 "제발 고기 좀 뒤집어라"라고 말했다. 좀 귀찮아도 손 한 번 더 움직이는 작은 변화가 다른 경험을 만들고, 그 생각이 다시금 작은 기억을 만들어내서 변화하는 삶, 지긋지긋한 일상에 주는 작고 소소한 감각의 태동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뭣보다 다정하다. 누군가를 먹이는 일,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는 일, 모두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돌봄이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자신을 돌보는 일과 같다. 그 이유는 돌봄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1) 돌봄이라고 했을 때 장애인, 노인, 아동, 질환자의 일상 활동을 돕는 지원 행위로 좁게 정의하기도 하는데, 넓은 돌봄은 관계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청소, 빨래, 요리, 씻기기, 정서적 지원 등 관계와 환경을 회복시키는 모든 활동을 범주에 두고 있다. 남, 녀, 노, 소, 장애, 비장애, 질환, 비질환 등 개인적 소인에 기인해 요구하고 요구받는 돌봄을 넘어선다. 넓은 돌봄은 모든 생명이 서로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보편적인 일이다.
1) 모리무라 오사무의 『케어의 윤리』를 인용한 『돌봄의 사회학』에서 발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소진되는 일들이 있다. 한 사무실에서는 오늘도 능구렁이 같은 상사가 출근하자마자 다가와서 말을 건다. 어김없이 "그래 김 과장 어제 그 일은 잘 돼가고 있지?"라고, 이걸 듣고 "어제 5시에 시킨 일이잖아요!"라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일도 있다. 치킨집에서는 메뉴판에도 없는 메뉴를 시키겠다며 "반 마리만 구워주세요. 되죠?" 능글맞게 말을 던지는 데에 억지 미소를 짓고 "안 돼요"라고 말하는 일도 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사장이냐, 나도 해주고 싶지. 근데 사장이 안 된다고!'라고 백 번은 말했다. 뒤돌아서서는 '반 마리 왜 못 팔게 하는 거야'라며 사장을, 메뉴에도 없는 걸 주문한다며 고객을 단박에 뒷담화를 하기도 한다. 시간을 들여 노동을 사장에게 주고, 그 사업체의 규칙에 따라야 하는 노동의 현장에서 자잘한 소진의 사건들이 쌓인다. 그리고 하루의 힘들었던 속마음을 털어놓는 타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일, 집중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일 역시 돌봄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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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은 월급을 받기 위해 노동력을 타인의 지배하에 두고 그 월급을 받아 생활하기 위한 것으로 돈을 버는 업무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괜찮은 삶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 수많은 일감 속에 우리는 놓여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사방팔방 널브러진 신발들이 눈에 들어오고, 화장실 거울에 맺힌 물방울 때는 당장이라도 닦아내야 할 일감으로 발견된다. 주방 화구 근처에 있는 타일에 붙은 기름때도 그렇다. 금전적인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집안일 역시 일감이고, 나의 삶과 이웃의 삶을 건전하게 재생산하는 일이 된다. 가사 노동이라 불리는 집안일은 사회와 타인과 자신, 그리고 노동력의 재생산을 돕는 환경을 조성하는 의미로서의 돌봄이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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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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