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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첨단산업 급소가 위험하다”…반도체 투톱 물량 책임진다는 이 회사에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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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공장 추가건설 발맞춰
고려아연 황산 생산량도 확대

세계최고 제련기술 보유
인력 이탈땐 기술유출 우려

LG화학과 전구체 합작법인
배터리 생태계 ‘게이트 키퍼’


매일경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영풍 MBK 파트너스가 경영권 분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위치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가 야간에 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 = 고려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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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해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놓고 산업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를 중심으로 하는 첨단산업 생태계가 흔들거리고, 자칫 이와 비슷한 경영권 분쟁에 한국 핵심산업들이 발목을 잡힐 수 있어서다.

글로벌 1위 비철금속 기업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여러 소재들은 전자부터 반도체, 자동차, 철강, 화학까지 여러 산업의 기초 소재로 사용된다. GDP의 약 6%를 차지하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제조 공정의 필수 소재로 사용될 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그린 수소와 같은 국내 주요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기간 산업이라는 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7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반도체 황산의 95.9%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사용한다. 생산량의 2%는 중국으로 수출하는 데 이 역시 SK하이닉스 중국법인 수요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생산량 대부분이 국내 반도체 업체에 쓰이는 셈이다.

한국에서 고순도 황산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 역시 고려아연의 울산 온산제련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데 향후 황산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MBK파트너스-영풍 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면서 온산제련소를 중심으로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영권이 바뀔 경우 온산제련소의 핵심 기술인력들이 이탈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지난달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이제중 부회장과 핵심 기술인력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MBK파트너스가 경영권을 가져가면 전원 퇴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고려아연의 제련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려아연은 아연·연·은·인듐을 비롯한 비철금속을 고순도로 추출하는 기술부문에서 세계 1위다. 고급 기술인력이 회사를 이탈할 경우 핵심기술이 해외에 유출될 수 있어 업계 뿐 아니라 정부까지 민감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생산계획이 흔들릴 경우 국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해외에서 반도체황산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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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의 미래성장동력 중 하나인 2차전지 분야 역시 탈중국 글로벌 공급망 구축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 여기서 이탈할 경우 그동안 고려아연이 투입한 수많은 투자금 역시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국내 배터리 산업은 소재 밸류 체인이 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배터리의 원소재인 니켈, 리튬 같은 원료 광물을 확보 못했고, 이를 제련해 금속을 추출하는 산업이 빈약하다. 이 때문에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소재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고려아연은 지난 2022년 계열사 켐코를 통해 LG화학과 배터리 양극재 핵심소재인 전구체 합작법인 ‘한국전구체주식회사(이하 KPC)’를 설립했다. 글로벌 광산 사업자와의 네트워크와 고려아연을 통해 원료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켐코 역시 전구체의 주원료인 황산 니켈을 연간 8만t 생산해 공급할 수 있어 원가 절감 등 시너지도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경영권 변동 가능성이 생기자 고려아연은 최근 이런 전구체 제조 기술을 산업부에 국가핵심기술로 판정해달라고 신청하기도 했다. 핵심 기술력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 유출될 경우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들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장욱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제련 산업은 반도체, 이차전지 등 핵심 산업의 기반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간 산업으로 한 번 균열이 생기면 회복하기 어렵다”며 “기업의 기술적 역량과 장인들의 현장 경험이 중요한 요소이며, 단순히 재무적 논리로 접근해서는 그 가치를 충분히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현대차가 고려아연에 지분 투자한 것은 우리 기업들이 핵심 소재의 탈중국화를 실현하는 데 고려아연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용 핵심 소재인 니켈의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고려아연과 현대차 그룹과의 동행은 기로에 섰다. 고려아연은 내년 5월까지 총 5063억원을 ‘올인원 니켈 제련소’에 투자할 예정이다. 제련소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려아연은 지난 9월 현대차그룹 해외 계열사 ‘HMG글로벌’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했다. 고려아연은 니켈 연 4만2600t 생산 계획을 세웠는데 현대자동차가 주요 공급처 중 하나다. 이를 두고 영풍이 HMG글로벌에 대한 신주발행 무효 소송을 걸어 또다른 법정 다툼을 진행 중이다. 법원이 영풍의 주장이 받아드려지면 해당 투자는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최 회장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인 제리코파트너스는 이날 이사회를 개최해 영풍정밀 공개매수가격을 기존 3만원에서 상향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고 관련 안건 다수를 통과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내용은 적절한 시점에 이사회결의 사항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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