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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페이커도 긴장하겠네”…게임 속 세상을 휘젓는 이 존재, 정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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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판 흔든다…‘인공지능 NPC’의 무한 확장


매일경제

크래프톤 산하 렐루게임즈가 개발한 AI NPC 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건’ . <크래프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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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용자가 게임 속 캐릭터를 마주치자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잘 생각해서 말하길 바래”라고 말을 건넨다. 캐릭터에게 “화분을 구입한 게 맞아?”라고 묻자 “인터넷으로 구입했어. 5월 11일에 배달됐어”라고 답한다. 크래프톤 산하 개발 스튜디오 ‘렐루게임즈’가 상반기 출시한 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 속 인공지능(AI)의 모습이다. 주인공이 수사관이 되어 1인칭 시점으로 범죄 현장을 조사하고, AI 캐릭터를 자연어로 심문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추리 장르 게임이다. 제작진은 ‘언커버 더 스모킹 건’ 제작에 오픈AI의 최신 AI모델 GPT-4o를 활용했다. 정해진 선택지를 따라가는 기존 게임과 달리 AI와의 채팅을 기반으로 용의자를 심문하기 때문에 자유도가 매우 넓다. 수사와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해도 어떤 형태로든 답변을 내놓는다. 게임 속 AI 캐릭터가 의도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2. 음식점을 운영하는 게임 속 AI 캐릭터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묻자 “그닥 좋지 않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왜, 무슨 일인데?”라고 묻자 “최근 범죄가 늘고 있어서 걱정돼”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엔비디아가 개발자들에게 시범적으로 선보인 게임 특화 AI솔루션에서 구현된 AI 게임의 모습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게임 산업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AI로 세계관을 학습해 마치 사람처럼 사용자와 소통하는 NPC(Non-Player Character·비플레이어캐릭터)가 실제 게임에서 속속 구현되면서다. 이른바 ‘지능형 게임’의 등장이다. 이는 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게임에 사는 ‘페르소나(하나의 인격체)’가 등장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NPC란 사용자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게임 속 캐릭터를 의미한다. 예컨대 마을주민, 상인, 행인 등 게임 속 특정 장소에서 만날 수 있고, 역할과 기능이 미리 정해진 캐릭터다.

기존 게임 NPC들은 플레이어의 실제 의도와 상관없이 조건에 따라 미리 준비된 대사와 행동을 그대로 출력하는 데 그쳤었다. 게임 스토리를 토대로 미리 설정된 대본에 맞춰 유저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거나 단순 배경으로만 움직인 것이다. 이 때문에 플레이어가 게임 속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도 한정적이었다. 예컨대 GTA 시리즈로 유명한 록스타게임스가 제작한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2’에는 50만줄 이상의 대사가 필요했고, 700명 이상의 성우가 참여했다. 여기에는 수천 시간 이상과 수백만달러의 비용이 소비됐다. 이처럼 사람이 일일히 수십만개의 대사를 준비해 입력시키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사용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진 못했다. 지난해 해외 게임 시상식을 석권한 라리안 스튜디오의 ‘발더스 게이트 3’의 경우 결국 플레이어가 미리 쓰인 선택지를 고르고 거기에 맞는 결과를 보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고도화된 생성AI의 출현으로 이용자가 실제 게임 속 세계에 있는 것처럼 자유롭게 캐릭터와 대화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구글과 진행한 연구는 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연구진은 게임 캐릭터에 AI를 탑재시켰다. ‘스몰빌’이라는 가상 마을에서 일상을 보내는 25명의 캐릭터는 인간의 언어(자연어)를 사용하면서, 스스로 학습하고 인간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한 캐릭터A에게 “캐릭터B가 마을 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입력하자, 입소문이 퍼지더니 캐릭터들이 B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등 마치 인간 사회와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플레이어의 자유도를 극대화한 ‘오픈월드’ 방식 게임에 AI NPC를 접목하고, 실제 영화를 방불케하는 화려한 그래픽을 구현하면 이전과 차원이 다른 몰입도를 자랑하는 ‘가상현실(VR)’ 게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간의 도파민을 기존과 비교할 수 없게 자극하는 게임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VR과 AI가 결합한 게임의 파급력을 두고 일각에선 우려가 나올 정도다.

게임업계에서는 AI NPC를 게임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핵심 기술로 판단하고 관련 기술을 축적해왔다. AI NPC가 구현된 게임이야말로 숏폼 영상, 스포츠 콘텐츠 등과의 ‘시간 점유’ 싸움에서 경쟁우위를 점할 ‘킬러 콘텐츠’라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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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 업체 마켓닷어스는 올해 생성AI가 적용된 게임 시장 규모를 11억 3700만달러로 전망했다. 2032년에는 71억500만달러로 관련 시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AI NPC를 상용화한 사례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중국 메이저 게임사 넷이즈는 지난해 6월 자국 시장에 출시한 다중 이용자 온라인 역할 수행 게임(MMORPG) ‘역수한’에 AI 기반 챗봇을 도입했다. 일명 ‘역수한GPT’가 적용된 NPC가 게임 속에서 사용자와 상호작용한다. 이 NPC는 사용자와의 대화를 기억하고 행동하며 NPC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등 실제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용자가 채팅창에 입력한 말이 NPC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퍼지고 NPC가 집단 행동을 나서기도 했다. 이용자가 NPC에 의해 신고당해 추방당한 사례도 있었다.

크래프톤은 국내 게임사 중 AI NPC 개발과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6월 생성 AI 기술에 특화된 게임 자회사 렐루게임즈를 세웠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게임 제작에 집중하라는 미션을 받은 조직이다. 현재 한국어를 지원하는 AI NPC가 적용된 첫 게임으로 손꼽히는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을 비롯해 다양한 AI게임을 개발중이다. 크래프톤은 전사 차원에서 마치 친구처럼 대화하며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는 AI 에이전트인 ‘버추얼 프렌드’도 2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중이다. 크래프톤은 2022년 AI 연구팀을 딥러닝본부로 재편했다. 본부는 필요한 AI 기술을 연구해 이를 산하 스튜디오가 개발하는 게임에 적용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크래프톤은 회사의 신작 게임 ‘인조이’ 캐릭터를 AI의 도움을 받아 고도화할 계획을 검토중이다. ‘인조이’는 플레이어가 신적인 존재가 돼 다양한 캐릭터를 조종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게임이다. ‘더 심즈’ 시리즈가 독식하고 있던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에 도전장을 내민 게임으로 주목받는다.

엔씨소프트는 내년에 생성형 AI 기술이 접목된 자율형 NPC로 구동되는 첫 게임 신작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동안 엔씨소프트의 대표 지식재산권(IP)인 ‘리니지’ 시리즈 일부에서 실험적으로 한시 적용해왔던 AI NPC가 향후 이 회사 게임 전반으로 대거 탑재되는 것이다. 이연수 NC 리서치 본부장은 “기존 NPC가 일방향적인 챗봇처럼 유저를 가이드 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앞으로 나올 AI NPC는 실시간으로 유저의 감정과 행동 패턴 등 다양한 정보를 이해하고 대화까지 가능한 역할로 강화될 것”이라면서 “게임 속 배경에 머물렀던 NPC가 AI와 만나 이제는 유저들과 상호 작용이 가능한 조력자이자 경쟁자로서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로 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씨가 개발 중인 AI NPC는 이용자가 게임 아이템을 획득하고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실마리를 NPC와 실시간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등 한 차원 높은 몰입도를 제공할 전망이다. 예컨대 리니지와 같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서도 AI NPC가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해외에서도 AI 챗봇을 활용한 게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본 게임사 야마다는 추리 게임인 ‘두근두근 AI 신문 게임’을 출시했다. 오픈AI의 GPT스토어에도 챗GPT 채팅 창에서 AI와 대화하는 형식의 게임이 쏟아지고 있다. 챗GPT 게임을 집중적으로 제작하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AI NPC 접목을 돕는 기반 기술 개발 경쟁에는 빅테크도 뛰어들었다. 게임 활용을 위해 개발된 AI NPC는 교육 등 비게임 분야에서도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는 의미다.

블리자드를 품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11월 미국 AI전문기업 인월드AI와 손잡고 AI NPC 개발 도구인 ‘캐릭터 엔진’ 개발에 나섰다. AI NPC 게임 개발을 원하는 개발사들을 위한 일종의 도구다. 캐릭터 엔진은 각각의 NPC의 성격과 기분, 특성 등을 설정할 수 있고 배경이나 신념, 일반상식 수준, 행동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입력시켜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월드AI는 챗봇 형태의 데모를 내놓는 한편, 실제 작동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인월드 오리진’이라는 시연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다. 구글 딥마인드 출신이 창업한 인월드AI의 기업가치는 5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게임용 엔진 ‘아바타클라우드엔진(ACE)’을 개발했다. 맞춤형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지향하고 개발자가 사용자와 음성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AI NPC를 지원한다. 엔비디아가 데모에서 공개한 캐릭터는 유저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모습을 보여줬다. 자동음성 인식 기술, 텍스트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기술 등이 탑재됐다. ACE를 활용해 제작된 게임 ‘메카 브레이크’는 내년 출시 예정이다. 특히 온디바이스 AI를 활용해 클라우드보다 AI 캐릭터의 대응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언어를 쓸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중국 텐센트는 AI 게임 엔진 ‘지넥스’를 개발했다. 텐센트 AI연구소 게임AI팀에서 개발한 지넥스는 NPC와 인게임 장면 생성을 지원한다.

한편 게임사들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게임 개발에 AI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있다. 단연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인건비) 문제다. 예컨대 트리플A급으로 불리는 글로벌 대작 게임의 경우, 게임 하나를 제작하는 데 200~300명의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고 제작비가 수억달러를 넘어서기도 한다. 게임사들은 게임 개발 난도 하락→신규 게임 개발자의 증가→게임퀄리티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소규모 단위의 게임 개발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반면 성우, 디자이너 등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은 넘어야 할 산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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