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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학교가 의대 시험족보 챙기는 곳인가”…대학가 곳곳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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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부가 의대생들의 ‘조건부 휴학’을 발표한 이후 7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게시판에 의대생 복귀 상담센터 운영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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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복귀 의대생에게 시험 ‘족보’를 공유하고, 교육과정을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대학가 곳곳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들을 복귀시키기 위해 각종 예외를 만드는 ‘땜질식’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7일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에 ‘제한적 휴학 허용’ 관련 공문을 보냈다. 전날 내년 1학기 복귀를 전제로 의대생들의 휴학을 허용하기로 한 비상 대책안을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돌아온 의대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도 내놨다. 그중 하나가 시험 ‘족보’ 공유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각 대학 본부와 의과대학에 “학업 고충 상담, 족보 등 학습 지원 자료 공유와 같은 교육·지원 기능을 강화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일부 의대생들이 ‘학교에 복귀하면 족보를 공유해주지 않겠다’며 수업 거부를 강요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 이후 대학생 커뮤니티에는 의대생을 ‘천룡인’이라고 부르는 밈(Meme·인터넷 유행어)이 다시 등장했다. 천룡인은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등장하는 특권계층을 일컫는다. “정부가 나서서 족보를 챙기는 이런 사태를 보고도 의사가 천룡인이라는 걸 모른다면 천민”, “대학 본부가 공유하는 거면 사실상 답지”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의과대학이 있는 수도권 사립대학 관계자는 “학생들끼리 비공식적으로 만드는 족보를 학교에서 공식화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의대 실정을 모르는 실효성 없는 방안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족보는 학생 대부분이 이미 가지고 있다”며 “학습권 보호는 지금 상황에서 전혀 유인책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했다.

대학들은 학사 운영과 학칙 개정의 부담을 떠안게 됐다는 입장이다. 공문을 받은 각 대학은 학생과 상담을 통해 휴학 사유 등을 확인하고, 복귀 시점을 정해야 한다. 또 내년에 복귀한 의대생과 신입생이 몰릴 것에 대비해 정원을 초과해 교육할 수 있는 최대 학생 수를 학칙에 반영할 계획이다. 학생들의 수업 거부 재발 방지를 위해 2개 학기를 초과해 연속 휴학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

의대가 있는 한 대학 기획처장은 “(의대 증원에 관해) 올해만 학칙을 몇 차례 개정했는데, 이는 일반적이지 않다”며 “정부 방침을 학칙에 반영했을 때 다른 학과와의 형평성 문제, 의과대학의 반발 등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했다.

전날 교육부가 의대 교육과정을 현행 6년에서 최대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점도 논란이 됐다.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 등 의료계는 “의대 교육의 질적인 고려는 전혀 없이 학사일정만 억지로 끼워 맞춰 부실교육을 감추려는 졸속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의대생들도 강경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손정호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비대위원장은 “휴학계 승인에 전제를 거는 것은 학생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자 강요, 협박”이라며 “교육과정을 5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땜질식’ 처방은 의학 교육 질적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전체 의대생의 복귀 또는 유급·제적 규모는 내년 2월쯤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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