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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이슈 미술의 세계

[북클럽] 베드로는 충청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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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렘브란트의 1632년 작 회화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당시 암스테르담에선 1년에 시신을 한 구만 해부할 수 있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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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는 여러 점의 명화가 있는데요.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그리고 렘브란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입니다.

렘브란트의 이 그림은 17세기 유럽의 근대과학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의학에 대한 그 시대 사람들의 호기심은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단축법으로 그려진 그림 속 시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목숨을 잃은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시킨다는 해석도 있지만,

실제로는 1632년 1월 31일 무장 강도 혐의로 교수형을 당한 아리스 킨트라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어떻게 그림 속 인물의 신원을 알 수 있냐고요?

다른 의사들에게 팔의 근육계에 대해 강의중인 튈프 박사는

암스테르담의 시(市) 해부학자였는데,

당시 암스테르담에서는 연 1회만 공개 해부를 허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공개 해부에 사용된 시신이 누구의 것인지 명백했을 수밖에요.

이 이야기는 영국 교양서 작가 콜린 솔터의 책 ‘해부학자의 세계’에서 읽었습니다.

인체 그리던 눈으로… 르네상스 해부학 이끈 건 예술가

“학생,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을까요?



충청도의 한 교회. 전도사의 질문을 받은 학생이 이렇게 답했답니다.

“의사 표현 확실히 할라구 한 거 아녀유. 세 번은 말혀야지, 세 번은 물어줘야 되는 것이고.



청주 출신 소설가 나연만이 ‘충청의 말들’(유유)에 적은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읽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대답을 들은 전도사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타지에서 오신 전도사님은 잘 몰랐다. 아닌 게 아니라, 충청도인에게는 적어도 세 번은 물어봐야 의중을 짐작할 수 있다는 건 학계 정설이다.



‘충청의 말들’은

유유출판사가 각 지역 토박이말을 통해

우리 언어문화의 다양성을 살피는 걸 목표로 기획한 시리즈 ‘사투리의 말들’ 중 한 권.

부제가 ‘그릏게 바쁘믄 어제 오지 그랬슈’네요.

특유의 느긋한 말투와 화법이 빚어내는 충청도 사투리의 ‘감칠맛’을

영화 대사, 문학작품 속 대화 등을 바탕으로 풀어냅니다.

한용운 시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은 사실 시인의 고향인 충남 홍성 방언으로 쓰였답니다.

그러나 이후 시의 표현을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아주 단정한 서울말로 쓰인 시’가 되었다네요.

한국인이면 다 아는 시의 핵심 구절 원문은 이렇습니다.

“날카로은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너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사러졌다’는 말은 ‘사라지다’의 홍성 방언이라고요.

“출격!”

“이런 걸 탈 수 있을리 없어요!”

“탈 거면 빨리 타라.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

이는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대사.

영화 대사를 충청어로 번역(?)해보는 습관이 있다는 저자는 이렇게 옮겨봅니다.

“어여 가 봐.”

“되것슈?” “

내비둬 그럼, 총알받이루나 쓰게.”

절체절명의 순간도 충청어를 적용하면 정말 느긋해지지 않나요?

지난 주말 Books 편집자 레터에 이 책 이야기를 썼더니

충청인인 후배가 문자를 보내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배. 저는 진짜로 한동안 식당서 음식 안 나오면 ‘아이고, 명 짧은 년은 저승가서 먹겄네~’ 하는 게 보편적인 건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우리 동네에서만 하는 말이더라고요.”



온라에는 “베드로가 충청도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다”는 댓글이 달리고요.

어느덧 한 주의 시작. 마음은 바쁘겠지만, 모두들 한 템포 쉬어가며 느긋한 여유도 즐기시길 빕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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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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